「10억원과 2천만원의 대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견되는 대한테니스협회의 차기협회장 선출에서 임시대의원회의를 통해 김두환 현회장이 정몽윤 현대할부금융 회장을 물리친 것은 경기단체 역사상 보기드문 사례로 두고두고 화제거리가 될 것같다.
대기업 회장 모시기가 소원인 영세한 경기단체 현실에서 연간 10억원씩 4년간 40억원의 거금을 지원하겠다는 현대그룹을 마다하고 매년 고작 2천만원 정도의 출연금으로 어려운 살림살이를 감내해야 할 경기인 출신 김회장을 재추대한 것이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는 국내테니스계로서는 막대한 자금력을 등에 업은 현대의 협회장 입성이 테니스발전에 새 바람을 일으킬 구세주의 등장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쌍수를 들고 환영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의원들이 투표에서 등을 돌린 데대해 `재계의 공룡' 현대그룹의 자존심이 구겨질만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정회장측은 `임기중 40억원이라는 공약에 그 누가 나를 마다할 것인가'라는 생각만 가지고 무혈입성을 낙관한 채 대의원들의 의중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것은 물론 얼굴 한번 제대로 내비치지 않았다.
현대해상의 김문일감독이 대의원회의전에 밝혔던 "21명중 2명만 빼고 모두 우리편"이라는 자신감은 12대7 패배라는 투표결과를 통해 어이없는 계산착오로 드러났다.
이에 비해 김회장은 "비록 돈은 없지만 지난 4년간 대과없이 성실하게 협회를 운영해 왔다" "경기인 출신으로 협회장을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대의원들에게 눈물까지 흘리며 한표를 호소했다.
"팀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 회장사가 될 경우 심각한 파벌이 조성될 것"이라는 경고도 한몫했다.
김회장의 인간적 호소에 감동한 12명의 대의원들은 일찌감치 김회장지지쪽으로 마음을 굳힌 채 9일 회의장으로 향했다.
"40억원을 총회전에 입금시켜라", "21개 지방 협회에 1억씩을 내라" "회장이 직접 회의장으로 와서 공약을 설명해라" 정회장 입성을 막기 위해 김회장 지지파들이 세운 작전은 정회장측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제 아무리 현대그룹이지만 대의원들의 이같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막무가내로 들어줄 수는 없는 일. 이날 결정으로 사실상 차기회장 선출이 종결됐음에도 정회장은 표결을 통보받은 후 김문일감독에게 "총회전까지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해 표결에 승복할 수도,협회장직을 포기할 수도 없음을 시사했다.
한번 작심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현대그룹의 스타일로 미뤄 볼때 정회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존심 회복에 나설 것이 확실하고 김회장측도 대의원들의 지지로 회장 선출이 일단락된 이상 결과가 뒤바뀌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태세. `다윗이 골리앗을 꺾는 일'은 결국 오는 29일 총회에서야 최종결과를 알 수 있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