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아이들 학업능력 3위-마음건강 34위

  • 동아일보

유니세프, OECD 국가 포함 분석
韓, 학업역량 뺀 대부분 지표 하위
신체건강, 6년새 13위→30위 급락
‘삶에 만족한다’ 응답 65%에 그쳐… “사교육 과열-SNS 몰입 영향” 지적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모 양(11)은 학업 부담으로 오랜 시간 우울감에 시달리다가 최근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중학교 수학까지 선행학습을 하는 등 ‘학원 뺑뺑이’에 지친 김 양은 등교마저 거부하다가 부모님과 자주 다투게 됐다. 최근엔 자살 시도까지 할 정도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됐다. 김 양은 “무언가에 쫓기는 마음에 깊게 잠들지 못한다. 마음 터놓고 대화할 친구도 없다”고 했다.

한국 아동·청소년의 마음 건강과 삶의 만족도가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4세·7세 고시’로 불리는 사교육 과열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과의존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아동·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 아동·청소년 ‘마음 건강’ 37개국 중 34위

유니세프는 12일 세계 주요국의 아동·청소년 건강 상태와 학업 역량 등을 비교한 ‘리포트 카드20’을 발표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포함한 44개국의 아동 권리 현황을 비교, 분석한 것으로 올해로 20번째 보고서다.

주요 항목 중 한국은 학업 역량을 제외한 대부분 지표에서 하위권을 맴돌았다. 읽기, 수학 등 기초 학업 능력 부문에서 한국은 41개국 중 3위에 올랐다. 반면 신체 건강은 2020년 13위에서 지난해 28위에 이어 올해는 30위까지 하락했다.

가장 취약한 건 정신 건강 부문이다. 우울감 등 마음 건강은 37개국 중 34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2020년 31위, 지난해 33위에서 순위가 더 하락했다. ‘삶에 만족한다’는 아동·청소년 비율은 65%로 37개국 중 6번째로 낮았다. 이 같은 정신 건강의 위기는 높은 자살률로 이어지고 있다. 15∼19세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한국이 10.9명으로 40개국 중 5번째로 높았다.

● “집중력 약 먹으며 공부시키는 사회 바꿔야”

한국 학생들의 정신 건강이 취약한 이유로는 영유아기부터 시작되는 과도한 사교육 등 학업 스트레스가 꼽힌다. SNS 과의존으로 인해 대인 관계가 갈수록 단절되는 것도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한국 사회는 승자독식, 실력주의 성향이 강해 아이들이 갈수록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며 “현실 세계에서 친구들과의 교류는 줄고 온라인 공간에만 머물게 되면서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적을 높이기 위해 약물을 오남용하는 학생도 많다”며 “약을 먹여 가며 공부를 시키는 어른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양극화와 맞물려 아동·청소년 정신 건강 위기가 더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소득 불평등 항목에서 한국은 41개국 중 13위를 기록해 빈부 격차가 큰 나라로 지목됐다. 저소득층일수록 신체적, 정신적 건강 관리에 더 소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조미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한국 아동이 겪는 신체·마음 건강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학업 중심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경제적 불평등이 아동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심리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다른 취약계층처럼 찾아가는 복지를 통해 정신 건강 위기 학생을 조기에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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