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숲 있으면 늑구 탈출 안했다” 동물복지 논쟁 재점화

  • 동아일보

‘관람형 동물원’ 개혁 목소리
2023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변경
정부 “유예 기한 내년으로 당길 것”… “신규 허가 시설도 차이 없다” 지적
해외에선 울타리 등 구조물 없애고 동물 야생성 위한 프로그램 계획도

대전 중구 오월드에서 탈출했다가 9일 만에 포획된 늑대 ‘늑구’가 지난달 17일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인 모습. 대전시 제공
대전 중구 오월드에서 탈출했다가 9일 만에 포획된 늑대 ‘늑구’가 지난달 17일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인 모습. 대전시 제공
“마취총을 들고 드론과 연결된 이어폰으로 늑구의 위치를 전달받으며 수색하다가 멀리 늑구를 발견했어요. 그 순간 늑구는 거기 있는 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달 대전 동물원에서 탈출했던 늑대 ‘늑구’ 수색에 참여했던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수의사)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김 팀장은 “늑구가 발견된 산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 그 정도 규모의 산이나 구조물이 동물원에 있었다면 늑구는 탈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동물 본성에 맞는 환경이 충분히 조성된다면 탈출구가 있어도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늑구가 탈출 9일 만에 붙잡히면서 동물원 내 동물 복지에 대한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2023년 부경동물원에서 앙상한 모습의 사자가 발견된 이른바 ‘갈비사자 사건’으로 동물원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꿨지만 이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허가제를 본격 시행해 동물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열악한 동물원은 문을 닫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동물 보호-야생화에 초점 맞춘 동물원

청주동물원은 국내에서 동물 친화적 동물원으로 손꼽힌다. 국내 제1호 거점동물원으로 동물 종 보전과 증식, 보호 등의 역할을 담당하며 불법 사육이나 학대, 서식지 파괴 등의 이유로 구조된 동물들이 옮겨진다. 부경동물원의 갈비사자도 이곳에 수용돼 ‘바람이’라는 새 이름으로 지내고 있다. 김 팀장은 청주동물원에서의 동물 구조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늑구 수색에 참여했다.

다른 동물원과 구별되는 특징은 동물원의 운영 목적이 관람보다 동물 보호 및 야생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청주동물원의 동물은 관람객이 찾을 수 있는 작은 우리에 살지 않고 자연과 비슷한 널찍한 공간에서 생활한다. 관람객은 운이 좋아야 동물을 볼 수 있다.

국내 기후에서 살기 부적합한 코끼리나 기린 같은 외래종은 자연 감소시키고, 야생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동물은 자연 방사하기 때문에 규모도 점점 줄어든다. 김 팀장은 “늑구 사태가 열악한 동물원의 동물 개체 수를 줄여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동물원이 종 보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동물 전시 사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해외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동물 친화적 환경을 조성한 동물원이 적지 않다. 호주 태즈메이니아섬에 있는 태즈메이니아 데빌 동물원은 이름을 ‘주(zoo)’가 아닌 ‘언주(unzoo)’라고 붙였다. 이곳은 관람객과 동물을 분리하는 철창이나 콘크리트 구조물을 최소화하고 일부 안전한 구역은 울타리를 아예 없앴다. 관람객은 먹이 주기 등 체험 프로그램 대신 자연 서식지에 직접 들어가 생태 몰입형 관람을 한다. 동물은 넓은 공간에서 본연의 야생성을 보존할 수 있다.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체계적인 야생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영국 런던동물원과 체스터동물원은 동물 야생성을 유지하기 위해 ‘동물 행동 풍부화 위원회’를 두고 동물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종별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을 수개월 단위로 계획한다.

● “동물원 허가제, 취지대로 운영해야”

정부는 늑구 탈출을 계기로 동물원 허가제 도입의 유예 기한을 기존 2028년에서 내년으로 앞당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지금도 허가제가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는데 유예 기한만 앞당겨서는 동물원 환경을 개선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동물원 사업 허가를 받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조건을 규정하고 있지만 아주 기본적인 사항을 규제하는 데 그친다. 예를 들어 동물 탈출과 관련해서는 ‘탈출 시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할 뿐 포획 방식, 사살, 생포 등 구체적인 사항은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허가제 도입의 취지는 동물원이라고 보기 어려운 열악한 동물 전시 시설은 문을 닫게 하는 것”이라며 “기본 사항만을 규정한 현 동물원법조차 지키지 못하는 곳이 태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신규 허가된 동물원조차 등록제로 운영되던 시절과 비교해 시설 측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며 “이대로 우후죽순 허가만 내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동물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이른바 ‘리와일딩(Rewilding·야생 복원)’을 통해 생태계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환경단체 ‘생명다양성재단’은 논평을 내고 “늑대를 자연에 놔둘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며 “야생동물이 야생의 회복을 추구하는 리와일딩에 대한 인식이 커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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