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기준 사랑의온도탑 69.5도
예년 대비 1도↓…상승 속도 더뎌
“생활비 부담 커…선뜻 기부 어려워”
그럼에도 연말 거리엔 작은 온정도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놓인 구세군 자선냄비에 한 시민이 성금을 넣고 있다. 2025.12.24. [서울=뉴시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계속 오르다 보니 기부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1000원, 2000원이라도 내고 싶은데 선뜻 손이 가지는 않네요.”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뉴시스와 만난 한 20대 여성 직장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연말을 맞아 기부에 참여했느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으며 “마음은 굴뚝 같은데 그러질 못했다”고 수줍게 답했다. 답변과 동시에 내쉰 한숨에는 팍팍해진 생활의 무게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연말연시를 맞아 소외 이웃을 향한 나눔 캠페인이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개인 기부의 체감 온도는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시민들의 기부 역시 차가운 기류를 피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26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희망 2026 나눔캠페인’ 전국 사랑의온도탑 나눔 온도는 69.5도, 누적 모금액은 3129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목표액(4500억원)의 약 70% 수준으로, 전년 같은 날(70.5도)보다 1도 낮다.
사랑의온도탑은 목표액의 1%(45억원)가 모일 때마다 온도가 1도씩 올라 100도가 되면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이다. 지난해에 진행된 2025년 캠페인은 2024년 캠페인보다 하루 빠른 1월 13일에 나눔온도 100도를 달성했고, 최종 108.6도를 기록했다. 당시 모금액은 4886억원으로, 사랑의열매 연말연시 캠페인 가운데 역대 최고액을 기록하며 나눔 목표액(4497억원)을 389억원 초과 달성했다.
다만 역대 최고 모금액에도 불구하고 개인 기부자 수와 기부 건수는 전년 대비 감소했다. 이번 캠페인 역시 기부 위축 흐름이 이어지면서 개인 기부 참여는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랑의열매 관계자는 “올해는 법인이나 기업에서 기부를 예년보다 앞당겨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나눔온도가 소폭 낮은 상황”이라며 “기부금이 모이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고 보긴 어렵지만, 더딘 흐름인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모금이 진행 중이어서 정확한 비율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올해 역시 법인 기부가 개인 기부보다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의 반응에서도 녹록지 않은 현실이 드러났다. 광화문 일대에서 만난 30대 남성 직장인 김모씨는 올해 기부에 참여했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떼며 “기부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생활비 부담이 커 선뜻 나서기 어렵다”며 “요즘은 ‘살기도 팍팍하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고 토로했다.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20대 여성 최모씨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연말마다 기부 캠페인을 보면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당장 생활이 불안정해 여유를 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실의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지만, 온정의 손길도 적지 않았다. 사랑의온도탑 캠페인과 함께 대표적인 연말 거리 모금으로 꼽히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상대적으로 나은 흐름을 보였다.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은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돼 오는 31일까지 진행된다. 구세군에 따르면 자선냄비에는 이달 22일 기준 약 20억원이 모였다. 이는 전년 같은 날(19억원)보다 약 5% 늘어난 수치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자선냄비 모금을 독려하고 있던 구세군 실습생 이승현(36)씨는 “명동은 다른 지역에 비해 기부 참여도가 높은 편”이라며 “특히 부모님과 함께 명동 구경을 나온 아이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많다”고 전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린아이 네 명이 연달아 다가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선냄비에 지폐를 넣었다.
이들 중 서울 강북구에 거주하는 이준영(11)군은 “돈이 부족해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천원이라도 기부하는 게 크다고 생각했다”며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장소에서 만원을 쾌척한 전수영(33남)씨는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원을 기부했다”며 “지나가다 자선냄비가 보여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명동성당 앞에서 기부에 참여한 50대 여성 백모씨는 길을 가다 자선냄비를 보고 다시 돌아와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요새 취업도 힘들고, 살기 팍팍한 건 사실이지만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며 “몇천원이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싶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이러한 기부 위축 현상을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 구조적인 문제로 봤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몇 년간 개인 기부가 위축된 흐름은 소비 위축과 맞물려 있다”며 “생활비 부담과 자산 불평등 심화로 ‘나도 살기 벅찬데 남을 어떻게 돕나’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어 구 교수는 “기부 역시 일종의 투자로 볼 수 있다”며 “금전적 보상은 없지만 만족감이나 자부심 같은 정신적 보상감을 체감할 수 있어야 개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기부를 받는 쪽이 보다 창의적으로 접근해 참여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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