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1년, 끝나지 않은 그림자] 〈1〉 드러난 진실과 남은 퍼즐
尹 “경고” 주장에 특검 “신빙성 없어”… 김건희 직간접 국정개입 정황 드러나
‘정치적 공동체’ 사전공모 여부 주목… 명태균 게이트 국면 전환용 의혹도
“김건희 여사를 구하기 위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12월 14일 수사 기한 종료를 앞둔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 관계자는 ‘마지막 남은 퍼즐’ 중 하나인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자신의 수사 상황을 묻거나 김명수 전 대법원장 등의 수사에 진척이 없다는 취지로 질책성 메시지를 보내는 등 국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포착해 ‘정치적 공동체’인 윤 전 대통령과 함께 계엄을 모의한 게 아닌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특히 계엄을 선포한 동기에 대해서도 ‘명태균 게이트’가 수면으로 떠오르며 김 여사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커지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의심하고 있다.
● 尹 “경고성 계엄” 주장에 특검 “신빙성 없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특검은 지금까지 계엄 준비 과정 등을 수사하며 “야당 폭거에 대한 경고성 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반박해 왔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과거의 계엄과는 달리 계엄의 형식을 빌려 민주당의 폭거 등 작금의 위기 상황을 국민들께 알리려 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특수본과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최소 수개월 전부터 구체적으로 계엄 실행을 준비한 정황을 확인하고 단순히 경고를 위해 오랜 기간 치밀한 계획을 세웠을 리 없다고 판단했다. 군 지휘부 인사 교체와 정보사령관·특전사 지휘관 인사 조정, 비상계엄 사전 모의 및 준비 등 계엄 준비가 단계적으로 진행된 점에 비춰 볼 때 계엄 선포가 경고성이 아니라 권력 독점을 위한 조치였다고 본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을 일반이적 혐의로 추가 기소한 내란 특검은 공소장에 윤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반년 만인 2022년 11월부터 ‘비상대권 조치’를 언급했다고 명시했다. 윤 전 대통령이 “나에게는 비상대권이 있다. 싹 쓸어버리겠다”고 말한 것도 경고성이 아닌 권력 독점을 위한 조치에 가깝다는 것이다.
● 계엄 동기에 ‘김건희 구하기’ 의혹
특검은 계엄 전 김 여사가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리는 순간마다 북한에 무인기(드론)를 날리며 북풍을 유도했다는 정황도 밝혀냈다. 북한을 도발해 계엄 명분을 만들려 한 이유가 김 여사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잠재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특검은 한 현역 장교로부터 “드론을 (두 달 내에) 5번씩 날려 보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고, 김용대 당시 드론작전사령관이 ‘V(윤 전 대통령) 지시’라고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드론을 날리기 시작했던 지난해 10월 무렵은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와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커져 가던 시점이다. 특검은 김 여사가 위험에 처하자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결심하고 행동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나아가 특검은 김 여사를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 공동체’로 규정하고 김 여사가 계엄 선포 과정에 관여한 사실은 없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검은 지난해 5월 김 여사가 박 전 장관에게 자신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와 관련해 “내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나” “(이재명 대통령의 부인) 김혜경,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수사는 왜 진행이 잘 안 되나”라는 취지로 보낸 메시지를 확보했다.
또 지난해 11월 창원지검에서 작성한 ‘명태균 공천개입 의혹’ 수사보고서를 박 전 장관이 김 여사에게 전달한 정황도 포착했다. 이를 토대로 특검은 윤 전 대통령과 김 여사가 검찰 수사를 무마하려 했고, 정국 전환용으로 계엄을 선포하려고 모의한 건 아닌지 확인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나 진술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이나 김 여사의 진술 외에 추가 증거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 계엄 해제 표결 의혹 수사 분수령 앞둬
계엄 당일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의 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 혐의 수사는 이달 2일 분수령을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예정된 추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이 발부되면 급물살을 탈 수 있지만, 기각될 경우 수사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추 의원에 대한 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나머지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추가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영장이 발부되면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대해 위헌정당 해산을 압박하며 내란 정국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영장이 기각되면 내란 특검은 정치권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하고 박 전 장관 등 나머지 주요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고 공소유지 체제로 전환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뒤 법무부 간부들에게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밖에 특검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내란 선동 의혹도 수사 중이다. 황 전 총리는 계엄 당일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등 계엄을 옹호하고 선동하는 글을 게시한 바 있다.
12월 28일 수사 기한이 종료되는 김건희 특검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여론조사 비용 대납 의혹’과 ‘김 여사의 매관매직 의혹’ 등에 대한 막바지 수사 단계에 접어들었다. 특검 수사 기한 종료 때까지 끝내 해소하지 못한 의혹들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로 넘겨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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