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입사해 처음으로 팀 활동 계획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내가 보인 반응이었다. ‘가난이 없는 공정한 세상’을 만든다는 기관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날 것, 화장실이 우리 팀의 주제가 됐다. 너무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화장실이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화장실 위생 문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 놓일수록 위생 문제도 극심한 ‘위생 불평등’이 심각했다. 극단적인 가난을 겪는 빈곤한 지역에서는 집에 화장실이 없어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멀리 떨어진 화장실을 가는 동안 각종 위협을 받고 폭행을 당할 수 있어 화장실 가는 것을 꺼린다. 부모는 아이에게 물을 적게 마시라고 당부한다.
전쟁과 기후 재난으로 난민이 돼 임시 거처에서 지내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지내야 하는 난민캠프에서 화장실이 마비되면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 발생률이 빠르게 올라간다. 화장실 하나가 망가졌을 뿐인데, 사람들의 권리는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하지만 화장실이 너무 당연해서 특별할 것 없는 매일을 보내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들의 문제는 눈에 띄지 않았고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로 했다. 열악한 화장실 환경을 보여줄 수 있는 현지에서 영상을 찍고, 화장실 위생 문제를 지적한 국제 보고서와 통계 자료를 모았다. 화장실의 심각성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와 표현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자 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옥스팜 ‘토일렛 페이퍼 클럽’을 만들었다. 그리고 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더 토일렛 타임즈’라는 이메일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했다. 국제 사회에 화장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도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 클럽 회원들이 늘었고 난민 여성을 위한 화장실을 디자인해 보고 싶다는 산업디자인학과 학생들, 특별 강연을 요청하는 학교 선생님, 서명과 후원에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을 만났다. 일방적인 외침에서 응답이 있는 소통으로 변하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났다.
토일렛 페이퍼 클럽은 우리에게 화장실이 당연하다고 해서 모두에게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같은 깨달음을 얻으면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가 아니어도 기꺼이 공감하고 변화를 만드는 데 동참했다. 11월 19일은 세계 화장실의 날이다. 이날만큼은 나에겐 당연하지만, 전 세계 34억 명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화장실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나의 목소리를 더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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