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 이용자 74% 교통사고 위험… “장애인 보행 환경 개선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19일 01시 40분


[위클리 리포트] ‘장애인의 날’ 앞둔 전동보장구 운전연습장 르포
서울 노원구서 20여 명 모여 수강… 경사로부터 ‘ㄷ자’ 코스까지 다양
승강기-열악한 인도 환경도 재현… 수강생 “사용법 처음 제대로 배워”
국내 전동보장구 이용자 14만 명… 76% “불가피하게 차도로 다녀”
교육-보험 지원 법적 근거 미흡… “정부 차원에서의 사업 추진 필요”

《‘전동 보장구’ 운전연습장 가보니

전동 휠체어 등 ‘전동 보장구’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늘고 있다. 하지만 도심과 길거리는 장애인들에게 여전히 녹록지 않은 곳이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서울의 전동 보장구 운전연습장을 찾아 이용자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15일 서울 노원구 전동보장구 운전연습장에서 한 수강생(오른쪽)이 전동스쿠터 운전 요령을 강사에게 배우고 있다. 바닥에는 전동스쿠터가 주행해야 하는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돼 있다. 이 연습장은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경사가 있을수록 한 번 멈추고 천천히 들어가야 해요.”

이향숙 씨(67)가 긴장한 기색으로 조심스레 조종간을 움직여 경사를 오르자 옆에 서 있던 강사 권은수 씨(48)는 “오르막길에서 조종간을 세게 밀거나 당기면 속도가 확 붙을 수 있으니 천천히 올라가 보세요”라고 반복했다. 이 씨가 천천히 조종간을 조정해 경사로를 무사히 벗어나자 권 씨는 “잘했어요. 운전을 정말 잘하는 편이세요”라며 무한 격려를 쏟아냈다.

이 씨가 탄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전동스쿠터다. 지난해 11월 서울 노원구엔 전동보장구 운전연습장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열었다. 전동보장구란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처럼 걷는 것이 어려운 장애인 및 고령층의 활동을 돕는 보조 기기다. 기자가 운전연습장을 찾아간 15일 전동보장구를 탄 수강생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 경사로부터 원형 코스, 승강기 모형까지


전동보장구 운전연습장은 보통의 운전면허시험 연습장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약 860m2(약 260평) 규모의 연습장엔 실제로 운전할 때 자주 맞닥뜨리는 직진 경사로와 ㄷ자 경사로부터 S, T, 원형 코스까지 있었다. 대부분의 인도가 고른 평지가 아님을 감안해 중간중간 단차와 기울어진 보도도 마련됐다. 장애인들이 전동보장구를 타면 승강기로 이동해야 할 일이 많음을 고려해 승강기 모형도 있었다.

수강생들은 권 씨의 안내에 따라 차례차례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연습했다. 권 씨는 “자전거나 자동차와 달리 전동휠체어는 한 손으로 운전해야 해서 수강생들이 후진이나 방향 전환을 할 때 특히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굴곡이 있는 도로나 장애물이 있는 곳을 지나갈 때 사고 나기 쉽기 때문에 집중 교육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강생들은 각자의 전동보장구를 운전하며 각 단계 미션을 해결하듯 코스를 헤쳐 나갔다. ㄷ자 경사로를 돌 땐 여러 번 좌회전을 해야 해 속도를 낮췄다. 승강기에 들어갈 땐 안에 있는 거울을 보며 폭을 맞추고 조심스레 진입했다. 바닥에 표시된 정지선에 맞춰 멈추는 연습을 할 땐 속도를 늦추고 조종간에서 손을 뗐다. 각 단계를 무사히 마칠 때마다 지켜보던 권 씨는 “운전을 너무 잘하신다”며 격려했다.

뇌 병변 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는 이경복 씨(62)는 교육이 끝난 뒤 “전동휠체어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배워서 혼자 외출을 하려면 미숙하고 불안했다”며 “특히 언덕을 오르는 게 어려웠는데 이곳에서 두 번 넘게 수업을 받으니 차차 적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향숙 씨도 “엘리베이터를 나오고 나서 방향을 트는 게 어려워서 외출을 자제했는데 반복해서 연습하니 자신감이 붙는다”며 웃어 보였다.

● 전동보장구 이용자 14만 명, 곳곳에 장애물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 복지와 밀접한 전동보장구를 이용하는 국내 장애인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주요 장애인 보조 기구 소지 현황’에 따르면 전동보장구(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 소지자는 2005년 2만2517명에서 2011년 10만1807명, 2020년엔 14만2547명으로 늘었다. 정부는 2005년부터 전동보장구 구입 비용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전동보장구 사용자는 늘어나고 있으나 이들이 마주하는 보행 환경은 제자리걸음이라는 점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모두 차가 아닌 ‘보행자’로 분류된다. 즉 차도로 다니면 안 되고 인도로만 다녀야 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잇따른다. 전동보장구를 타고 다니기엔 인도 폭이 좁거나 장애물이 있는 곳이 많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이 2023년 전동휠체어 및 전동스쿠터 이용 장애인 4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약 73.8%가 최근 5년 이내 교통사고 위험 상황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해당 장소로는 차도와 횡단보도가 각각 22.5%(130명), 21.8%(126명)로 가장 많았고, 보도(17.3%), 아파트 단지 내 도로(13.8%), 이면도로(9.9%) 순이었다.

응답자의 76.3%(326명)는 불가피하게 차도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배경으론 “장애물, 경사로, 불법 주정차 차량, 공사 구조물, 간판 등으로 보도 이용이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61.2%(234명)로 가장 많았다. 공단 관계자는 “전동보장구를 이용하는 장애인분들은 보행자 도로를 이용해야 하지만 불법 점유물과 불량한 도로 환경, 높이가 있는 연석 등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5년째 전동휠체어를 타는 우하숙 씨(67)는 “인도를 가로막은 킥보드 때문에 돌아간 적이 많다”며 “인도가 차도보다 오히려 위험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고 말했다.

● 미흡한 안전교육, 법적 근거 없는 배상 책임

인도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사이 전동보장구를 탄 장애인들의 사고도 잇따랐다. 지난해 11월 광주 광산구의 한 아파트 앞에선 50대가 몰던 차가 70대 여성이 타고 있던 전동휠체어를 치어 여성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2022년 4월에도 서울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승강장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50대 남성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2층에서 1층으로 올라가려다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에스컬레이터 입구에는 휠체어의 진입을 막는 차단봉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2019년 2월엔 부산 영도구에서 장애를 가진 아들이 어머니를 무릎에 앉혀 함께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이동하던 중 좌회전하던 택시와 정면으로 부딪쳐 어머니는 숨지고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사고 현장 바로 옆에는 보행로가 있었지만, 전동휠체어가 다니기엔 폭이 좁아 차도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동보장구 사용과 관련해 안전교육이 부족한 점도 사고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동보장구는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구입 후 운전할 때 면허를 따거나 별도의 교통 안전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 우 씨는 “전동휠체어를 타다 보면 속도감 때문에 보행자를 칠 뻔한 적도 있고 차도로 가는 경우도 많다. 이건 운전면허 시험이 없기 때문에 연습장에서 교육이라도 받아서 스스로 안전하게 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전동보장구 운전연습장 연습 등 안전교육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이나 법적 근거는 미비한 상황이다. 현재 전동보장구 운전연습장은 전국에서 서울 관악구와 노원구 등 2곳에 불과하다. 노원구 관계자는 “노원구에서 자체적으로 ‘장애인 이동기기 수리 등의 지원에 관한 구의 조례’를 개정해 운전연습장을 지을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들 “중앙정부 차원 법제화 필요성”

전문가들은 인도 환경을 빠르게 개선할 수가 없다면 전동보장구 안전교육에 관한 지침과 사고가 발생했을 시 보험 처리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현재는 전동보장구를 이용하다 사고가 나더라도 보험 지원에 관한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 이에 관심 있는 지자체에서만 자체적으로 전동보장구 보험 가입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입법해 해당 지자체에 거주하는 장애인만 지원하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정미숙 박사는 “지자체별로 알아서 하다 보니 각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전동보장구 장애인의 이동권이 천차만별이고, 또 지자체 예산이 지속적으로 확보되어 해당 사업의 유지가 가능한지도 불투명하다”며 “지속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관리하기 위해선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법제화 및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공단 소속 강민수 교수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거나 사업을 추진해 운전연습장을 확대하고, 이와 더불어 인도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동보장구
장애인들의 신체 활동 및 이동을 도와주는 기기 중 전기 동력으로 작동되는 것들. 대표적으로 전동스쿠터와 전동휠체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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