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돈 많이 벌기’ 아이들이 늘어난다

  • 주간동아
  • 입력 2024년 4월 14일 09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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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심리] 돈에 대한 욕망은 자본주의가 만든 것이 아닌 인간 본능

A는 초등학생이다. 어려서부터 곤충 채집을 좋아했다. A의 꿈은 희귀곤충 채집가였다. 크면 아마존 등에 가서 희귀곤충을 채집하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 장래희망이 바뀌었다. 희귀곤충 채집가가 되지 않겠다고 했다. 초등학생은 장래희망이 계속 바뀌니 몇 년 동안 꿈꿔왔던 희귀곤충 채집가가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희귀곤충 채집가의 꿈을 버리게 된 이유다. 희귀곤충 채집가는 돈을 벌 수 없기에 꿈을 버렸다고 한다. 장래희망을 정하는 데 ‘돈’이 중요한 기준이 됐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려 한다.

B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화가가 되는 게 꿈일 것 같다. 하지만 B에게는 다른 꿈이 있다. 유튜버가 되는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은 유튜브를 많이 보고 유튜버도 많이 대하다 보니 유튜버가 되고 싶은 것이 별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유튜버가 되고 싶은 이유다. 많이 대해서 익숙한 사람, 유명한 사람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좀 더 중요한 건 수입이다. 구독자가 많은 유명 유튜버가 얼마를 버는지 알고, 자신도 유튜버가 돼 그만큼 벌고 싶어 한다. 돈이 장래희망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초등학생이 돈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모를까, 아직 열 살도 안 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돈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실제 10만 원, 100만 원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도 못 잡는 아이들이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가지려 한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물들었다. 사회가 워낙 돈, 돈 거리니 아이들도 금권주의에 물들어버렸다. 아이들이 순수함을 일찍 잃는 것, 이 또한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이리라. 그런데 정말 사람들이 돈, 돈 거리는 게 자본주의 사회, 시장경제 사회라서 그런 것일까. 돈을 중요시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들어서기 전에는 사람들이 돈에 대해 초연하고 돈 욕심이 없었을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돈을 좋아한다. [GETTYIMAGES]
사람은 본능적으로 돈을 좋아한다. [GETTYIMAGES]

금권주의에 물든 아이들

조선시대에 노상추라는 무인이 있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살았고, 경상도 출신 남인이었다. 노상추는 무과 과거에 급제한 후 몇십 년간 무인 생활을 했는데, 삭주부사를 지낸 게 가장 높은 벼슬이다.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고 특별히 알려지지 않은 조선시대 무인이었다. 노상추가 유명한 건 그의 일기 때문이다. 노상추가 18세였던 1763년부터 1829년 84세로 사망하기까지 60년 넘게 쓴 일기가 전해진다. 18~19세기 초 조선시대 무인의 생활, 노상추의 고향인 경상도와 노상추가 벼슬살이를 한 한양, 삭주 등 각 지역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노상추가 1809년(순조 9)에 쓴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나라의 상평통보는 끝내 사람들의 윤리를 없애고 말 것이니 참으로 통탄스럽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돈과 재화의 이로움만 알고 윤리와 하늘의 도를 모른다. 사람의 도리가 무너진 것이다. 지금 돈을 혁파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욕심을 어떻게 막겠는가. 세상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서 급히 해야 할 일로는 돈을 폐지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매우 통탄스럽다.”

당시 조선시대 병폐가 돈이라는 언급은 이 한 번뿐 아니라 계속해서 나온다. 1811년(순조 11) 1월 일기에서는 벼슬을 얻으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후 이렇게 마무리한다.

“(돈으로 벼슬을 사고파는) 이런 태세로 미뤄볼 때 돈이 반드시 나라를 망칠 것이니 진실로 통탄스럽다.”

노상추는 지식인이다 보니 사회 비판을 많이 했다. 당쟁도 비판했고, 영남 사람들을 차별하는 조정 관습도 비판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비판한 것은 바로 ‘돈’이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고 돈을 추구하는 행태, 그것이 전통 윤리가 무너지고 비리가 발생하는 주된 원인이라는 얘기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돈 의식 달라져

최근 우리가 가장 큰 사회문제로 꼽는 것은 지구 기후변화, 정치 혼란, 저출산 등이다. 돈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돈이 현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걸 보면 오히려 현대 사회보다 조선시대가 돈에 민감하고 돈을 더 중요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노상추가 비판한 ‘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선사회’는 자본주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자본주의를 잘 모를 때는 돈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는데, 자본주의화되면서 돈이 중요해진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조선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멀었던 시대다. 돈 버는 일을 무시하고 오히려 천시하는 유교가 지배하는 사회였고, 유교 중에서도 정신적 측면을 특히 강조하는 주자학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같은 유교 사회였던 중국이나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더 상업화됐고, 돈을 벌어 재화를 모으는 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선은 상업도, 산업도 세계에서 가장 뒤처진 국가 중 하나였다. 당시 세계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가장 거리가 먼 국가를 꼽으라면 분명 조선은 최상위권에 속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 살면서 노상추는 국가의 가장 큰 병폐가 사람들이 돈을 너무 좋아하고 돈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가장 돈을 천시하는 국가에서도 사람들은 돈을 추구했다. 이 정도면 그냥 사람은 어떤 사회에 살든 돈을 좋아한다고 보는 게 맞다. 사회 형태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즉 돈을 좋아하는 건 사람에게 거의 본능인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돈에 대한 인식이 점차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 아이들은 돈에 대해 모른다. 그러니 돈 욕심도 없다. 그럼 아이들이 정말 욕심이 없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돈 욕심은 없지만 물건 욕심은 있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봤을 때 아이들은 무조건 그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한다. 물론 장난감에 별로 관심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물욕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평소에는 장난감에 관심이 없지만, 어쩌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봤을 때 그걸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은 더 크다. 욕망의 총량은 일정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이라고 해봐야 장난감뿐이니 현대 물질 사회에서 별게 아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는 장난감을 고를 뿐이지만, 희한하게 쌓여 있는 장난감 가운데 어떤 게 가장 좋은지 분간해내는 능력이 있다. 아이는 가격에 대해 모른다. 그런데 가장 비싼 장난감을 골라낸다. 일부러 비싼 장난감을 고르는 게 아니다. 자기가 보기에 가장 좋은 장난감을 고른다. 그런데 그게 같은 종류의 장난감 중 가장 비싸다. 어떤 게 가장 좋은지 구분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본능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달라진다. 돈에 대해 알게 되고, 뭔가를 사달라고 했을 때 부모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사줄 수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고르는 게 아니라, 부모가 사줄 수 있는 장난감을 고른다. 욕망을 억제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걸 배워간다. 아이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돈과 물질에 대한 욕망을 배워가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돈과 물질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는 걸 배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던 욕망이 그냥 사라질 리는 없다. 어려서부터 꿈이던 희귀곤충 채집가를 돈 때문에 포기하듯이, 돈 때문에 유튜버가 되고 싶어 하듯이 돈과 물질에 대한 욕망은 언제 어디선가 튀어나온다.

돈에 대한 욕망 억누르는 자본주의 제도

결국 조선시대 생활상이나 아이들을 보면 돈과 물질에 대한 욕망은 자본주의에 의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원래 사람들이 가진 욕망, 즉 본능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사회제도는 어려서부터 그 욕망을 누르고 제어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돈과 물질에 대한 사람들의 본능이 완전히 사라질 리는 없다. 언제가 됐든 숨겨진 본능은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그 튀어나오는 본능을 인정하느냐 평생 억누르게 하느냐, 자본주의와 다른 제도의 차이점은 단지 이 점에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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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35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
#초등학생#장래희망#돈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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