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에 폭염까지… 출산 주저하게 만드는 ‘기후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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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저출생의 상관관계
2050년 어린이 94% 이상기후 노출… 영유아, 오염물질 더 많이 흡입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나쁜 영향… 미국-영국 등 5개 국가서 설문조사
53% “자녀 계획 세우는데 영향 커”… “저출생-기후위기 함께 고민해야”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제주 제주시 이호테우해수욕장에서 반팔을 입은 연인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제주 낮 최고기온은 23.1도를 기록했다. 제주=뉴스1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제주 제주시 이호테우해수욕장에서 반팔을 입은 연인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제주 낮 최고기온은 23.1도를 기록했다. 제주=뉴스1
“미세먼지에 폭염까지, 이런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요.”

아직 자녀가 없는 결혼 3년차 직장인 최모 씨(33) 부부는 ‘딩크족’(자녀 없는 맞벌이 부부)을 고려하고 있다. 직장 커리어나 사교육비 등 출산 여부를 고민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폭염, 미세먼지 등 기후위기에 대한 걱정도 있다. 최 씨는 “평소 조카가 비염이 심해 고생한다. 방학 때 미국 하와이에서 지낼 땐 한 번도 알레르기약을 먹지 않다가 한국에 돌아오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 바로 증상이 다시 나타나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미세먼지뿐 아니라 이상기후로 폭염이나 폭우도 잦아지는 걸 보니 아이 낳기 무섭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사상 최저를 경신했다. 최근 2030세대 일각에선 출산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기후위기’를 꼽기도 한다.

● “기후위기가 출산에 영향” 美설문조사
2년 전 결혼한 직장인 이모 씨(33)와 남편 박모 씨(32)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씨는 “지난해 여름 폭염 때 남편이 ‘날씨가 미친 것 같다’더니 기후변화 관련 책을 사왔다”며 “책을 읽으면서 진지하게 ‘우리 애 낳아도 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결혼·육아 등을 주제로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는 게시글이 많다. 지난달 한 커뮤니티에는 ‘이젠 태어날 아이 입장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제목의 글이 호응을 얻었다.

글쓴이는 “기후위기 뉴스를 볼 때마다 앞으로 살기 더 나빠질 세상에 아이를 남겨두면 미안할 것 같다”며 출산을 포기한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지원하자는 마음으로 남편과 다음 달부터 미혼모센터에 후원하기로 이야기했다”고 썼다. 기후위기가 결정적 이유는 아니더라도, 출산을 안 하겠다는 결심을 더 굳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해외에선 기후위기가 저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조사 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6월 글로벌 리서치 회사 ‘모닝컨설트’가 미국 영국 인도 멕시코 싱가포르 등 5개 국가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3%가 “기후위기가 자녀를 갖는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91%가 지구 온난화(62%), 물 부족(51%), 극심한 이상기후(43%) 등을 우려하며 이같이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진은 2012∼2022년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성인 1만788명을 대상으로 한 13개 중 12개의 연구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가 증가할수록 사람들은 자녀를 적게 낳거나 아예 낳기를 포기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2021년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투자자에게 보내는 분석 보고서에서 ‘기후위기가 출산율 저하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을 내놨다.

● 英소아과 의사 “영유아가 오염물질 더 많이 흡입”

이 같은 우려에는 근거가 있다. 지난해 12월 국제아동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벨기에-스위스 연구팀의 공동 연구 보고서에서 “2020년생 아동은 1960년생 조부모 세대보다 평생 6.8배 이상의 폭염을 경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불과 가뭄은 각각 2배와 2.6배, 홍수는 2.8배 더 경험할 것으로 전망됐다.

또 2022년 유니세프는 “전 세계 어린이 4명 중 1명은 이미 기후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어린이 5억5900만 명이 매년 4, 5회 위험한 폭염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유니세프는 2050년에는 전 세계 어린이의 94%가 이 같은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10월 가디언은 ‘기후위기가 어린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이미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소아과 의사인 커밀라 킹던 박사는 “영유아는 성인보다 숨을 더 빨리 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오염물질을 흡입한다. 대기오염이 소아천식을 비롯해 혈압, 인지능력,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기후위기로 조산과 영유아의 입원 위험이 높아진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위협하는 중대 요소인 저출생과 기후위기를 묶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출산율 저하의 요인으로 기후위기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며 “출산율 저하의 요인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기후위기와 같이 나빠질 것이 확실한 미래는 출산 결심에 영향을 충분히 줄 수 있는 만큼 다각적으로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이상기후#기후변화#저출생#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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