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버리는 헌 옷 팔아 ‘기부금’ 모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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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서 마트 운영하며 헌 옷 판매
주민들, 옷 기부하고 싼값에 사 가… 화재 이재민에 모은 옷 나눠주기도
8년간 640 만원 모아 노원구에 기부… 구 “주민들이 만든 기부금 의미 커”

4일 서울 노원구 파랑새마트 앞에서 마트 주인인 정구순 씨가 판매 중인 옷을 선보이며 웃고 있다. 정 씨는 8년 전부터 주민들로부터 헌 옷을 기부 받아 판매한 금액을 노원구에 기부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4일 서울 노원구 파랑새마트 앞에서 마트 주인인 정구순 씨가 판매 중인 옷을 선보이며 웃고 있다. 정 씨는 8년 전부터 주민들로부터 헌 옷을 기부 받아 판매한 금액을 노원구에 기부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이 옷 어때? 나랑 잘 어울리지. 나 이거 하나 사야겠다.”

4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파랑새마트 앞. 옷걸이 두 대에 진열된 옷들을 살피던 장화순 씨(75)가 가죽 재킷 하나를 들며 이렇게 말했다. 마트 주인인 정구순 씨(65)는 작은 수첩을 가지고 나오더니 판매한 옷의 종류와 금액을 꼼꼼히 적었다. 장 씨는 “누가 기부했는지 명품 옷이 걸려 있길래 내가 골랐다”며 “잘 살펴보면 예쁘고 상태가 좋은 옷도 많아 자주 구매하러 온다”고 말했다. 8일 노원구에 따르면 상계3·4동 주민들이 파랑새마트에 기부한 헌 옷을 판매해 모은 돈은 8년간 640만 원이다. 정 씨는 이 돈을 노원구에 틈틈이 기부해 왔다.

● 버려지는 헌 옷 팔아 기부

4일 찾아간 파랑새마트 앞에는 80여 벌의 옷이 진열돼 있었다. 남성 셔츠, 여성 블라우스, 가죽 재킷 등 기부된 옷의 종류도 다양했다. 인근 주민들은 주변을 지나가다 마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옷을 구경했다. 옷은 상태나 종류에 따라 1000∼3000원에 판매된다고 한다.

30여 년 전 상계동에 처음 가게 문을 열었다는 정 씨는 “8년 전까지만 해도 생계를 위해 마트를 운영했다”며 “아이들이 잘 크고 나니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겨 ‘밥벌이만 하고 살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동네 주민이 버리는 헌 옷이 늘 아까워 보였던 정 씨는 “버릴 옷이 있으면 마트에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금세 마트는 동네 헌 옷을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하는 사랑방이 됐다.

과자를 팔던 마트 입구 앞 매대에는 이제 기부받은 옷들이 진열돼 있다. 정 씨는 기부받은 옷을 직접 세탁해 판매한다. 수익금은 장부에 기록해 매년 노원구에 기부하고 있다. 주민이 기부한 헌 옷을 다른 주민이 사가고, 이 돈은 기부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셈이다. 정 씨는 “계절마다 동네 주민들이 옷 정리를 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겨울 옷이, 겨울에는 여름 옷이 나온다”며 “혼자서는 절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옷을 기부해주고, 그 옷을 사주는 주민들의 마음이 십시일반 모여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라며 웃었다.

● 8년간 기부 활동 이어와

특히 상계3·4동 17통장인 권귀아 씨(66)가 가장 적극적으로 파랑새마트의 ‘헌 옷 기부 운동’을 도왔다. 권 씨는 “다니는 교회에서 누가 이사 간다고 하면 직접 집으로 찾아가 안 입는 옷들이나 버리는 물건을 차에 실어 마트로 가져왔다”며 “가져와서 쓸 만한 물건들을 정리하면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

정 씨는 이달 4일에도 권 씨와 함께 지난 한 해 동안 헌 옷을 판매하고 모은 돈 100만 원 상당을 노원구에 기부했다. 이들은 판매금 기부뿐만 아니라 기부받은 옷을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최근 상계2동에 갑작스레 불이 나 주민들이 입을 옷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파랑새마트에서 옷 두 상자를 기부했다”며 “고시원에 사는 어려운 이웃에게도 직접 방문해 옷을 나눠 줬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기부금을 전달받은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헌 옷은 재활용하고, 돈은 따로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주민 간 ‘십시일반’ 기부라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주민들이 알뜰하게 모아 낸 기부금인 만큼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헌옷#기부#기부금#상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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