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정상 통제, 안전지침과 불만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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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잔잔한 날에도 출입 통제
대피소까지 와서 발길 돌려야
국립공원 “기상 예보에 따른 것”
탐방예약제도 개선 목소리 커져

20일 오전 한라산국립공원 해발 1500m의 삼각봉대피소에서 백록담 정상으로 향하는 구간을 통제하자 많은 탐방객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0일 오전 한라산국립공원 해발 1500m의 삼각봉대피소에서 백록담 정상으로 향하는 구간을 통제하자 많은 탐방객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잔뜩 기대를 하고 왔는데 어떡해요. 이제 돌아가면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

20일 오전 9시경 한라산국립공원 관음사 탐방로 해발 1500m 삼각봉대피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핵심인 한라산 백록담 정상을 밟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이 한국어로 울먹이면서 하소연했다. 이날 국립공원 측은 삼각봉대피소에 ‘기상 악화로 탐방을 통제합니다’는 팻말을 내걸고 백록담 동릉 정상으로 향하는 2.7㎞ 구간을 막았다.

‘기상 악화’라는 국립공원 측의 설명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삼각봉대피소 주변에 안개가 다소 심하게 끼긴 했지만 호우가 쏟아지거나 몸이 흔들릴 만큼 강한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었다. 관음사 탐방로 입구에서 삼각봉대피소까지 6km 구간은 비가 간간이 내렸지만 바람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날 한라산을 찾은 최모 씨(38·서울 서대문구)는 “백록담 정상을 가려고 1년 동안 계획하고 준비를 했는데 너무나 아쉽다”며 “안전을 우선해야 하지만 정상 탐방을 못 할 정도로 날씨가 나쁘지 않았는데 (통제 조치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라산국립공원은 이날 한라산 주요 탐방로 가운데 정상으로 향하는 삼각봉대피소∼백록담 동릉과 진달래밭대피소∼백록담 동릉 등 2개 구간을 부분 통제했다. 저지대는 물론이고 고지대의 실제 기상은 탐방이 힘들 정도는 아니어서 일부 탐방객들은 국립공원 측에 통제 이유를 묻는 전화를 걸기도 했다. 탐방예약객에게 정상 통제 여부를 문자로 안내하고 있지만 외국인 등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았다.

국립공원 측은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기상특보에 따라 탐방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제주에 강풍주의보가 발효됐다. 안전 등산을 위한 지침에 따르면 강풍주의보를 비롯해 호우주의보, 대설주의보가 내려지면 정상을 통제한다. 관음사·성판악 탐방로에서 정상에 도달하는 일부 구간을 막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해발 1700m 윗세오름대피소에 이르는 다른 탐방로인 어리목·영실 탐방로는 주의보 상황에서도 대부분 개방한다.

기상특보 가운데 태풍경보, 호우경보, 대설경보와 함께 태풍주의보가 내려지면 한라산 입산을 전면 통제한다. 기상특보가 내려지지 않더라도 갑작스러운 폭우와 하천 급류, 강한 눈보라와 비바람, 가시거리 20m 이내의 안개 등으로 기상이 악화되면 국립공원 측의 자체 판단으로 탐방을 통제하기도 한다. 국립공원 관계자는 “기상청의 예보와 실제 날씨가 다를 때 항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탐방객들의 아쉬움이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지침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기상에 따른 탐방 통제 외에 탐방예약제에 따른 통제도 아쉬운 점이 있다. 한라산 탐방예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범 운영이 일시 중단됐다가 2021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한라산 백록담 정상을 갈 수 있는 코스의 하루 인원을 성판악 탐방로 1000명, 관음사 탐방로 500명으로 각각 정해 사전에 예약을 받는 것이다. 백록담 정상의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다.

문제는 성판악 탐방로 구간에 있는 사라오름이나 관음사 탐방로 구간의 탐라계곡 등 정상이 아닌 곳까지만 탐방하는 것도 예약제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탐방예약제 적용을 정상에 이르는 구간뿐 아니라 전체 탐방로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한라산을 자주 찾는 한 탐방객은 “기상 상태에 따른 출입통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백록담 정상 보전을 위한 예약제 시행도 필요하다”며 “하지만 정상이 아닌 곳을 탐방할 때도 예약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라산#정상 통제#안전지침#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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