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들이 떼어준 간…“고마워 매일 수술 자국 매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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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8월 18일 1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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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들에게 간을 이식받은 고명자 씨가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써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뉴시스
남편과 아들에게 간을 이식받은 고명자 씨가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써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뉴시스
자가면역성 간병변증으로 고통받는 60대 여성에게 남편과 아들이 각각 간 일부를 떼어줘 생명을 살렸다.

강원 춘천시에 거주하는 서규병 씨(69)와 아들 서현석 씨(40)는 지난달 25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고명자 씨(68)에게 각각 자신의 간 일부를 떼어 이식해 주는 수술을 받았다고 17일 뉴시스가 밝혔다.

고 씨는 10년 전 병환으로 앓아누운 뒤 오랜 투약으로 인한 부작용 탓에 더 이상 치료가 어려웠다.

남편 서 씨는 자신의 간을 떼어주기 위해 의료진을 오랜 시간 설득했다. 고령인 탓에 수술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들 현석 씨는 간을 절제할 수 있는 정도가 일반적인 공여자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이들 부자는 각각 간 일부를 떼어 고 씨에게 주기로 했다. 남편 서 씨는 퇴직 후 일하던 직장까지 떠났다. 서 씨는 경찰관으로 재직할 당시 강원경찰청을 비롯해 춘천경찰서와 화천경찰서 등에서 수사 업무를 해왔고, 퇴직 후에는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 밑에서 일했다.

아내 고명자 씨(오른쪽)에게 자신의 간 일부를 이식해 준 남편 서규병 씨. 뉴시스
아내 고명자 씨(오른쪽)에게 자신의 간 일부를 이식해 준 남편 서규병 씨. 뉴시스
긴 시간이 걸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고 씨는 회복이 늦어져 3주간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서 씨 부자는 고 씨 모습을 유리창 밖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고 씨는 차츰 회복해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고 씨는 아침마다 수술 자국을 매만진다. 기관절개술을 해 말을 할 수 없는 그는 화이트보드에 “아들과 아버님이 소중한 간을 주셔서 내가 매일 한 번씩 만지고 있어” “현석이 너무 반가워” “나는 괜찮아” “엄마가 미안해” “잘 먹고 우리 가족 행복하게 살자” 등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었다.

고 씨에게 간을 이식해 준 부자는 독립운동과 한국전쟁에서 조국을 지킨 할아버지 서성섭 씨의 아들이자 손자다. 서성섭 씨는 어린 시절 강원 홍천군 동면 속초국민학교 연못에 밤마다 무궁화를 몰래 심다가 일본 순사들에게 발각돼 고향을 떠나 피신해야 했다. 한국 전쟁 당시 소대장으로 고향인 홍천 삼마치 전투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했다. 현재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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