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주택으로 번진 가운데 주민들이 긴급하게 대피를 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제공
“밭에서 같이 농사짓자고 노후 계획까지 다 짜놓고 이렇게 혼자 가면 어떻게 해….”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아이스아레나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김진광 씨(82·여)는 손으로 땅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강릉 산불이 나기 시작한 난곡동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서 남편인 전모 씨(88)와 함께 펜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김 씨는 “남편이 서울에서 40여년 공직생활을 했다. 그러다 은퇴하고 강릉에 정착한 지 25년째”라며 “펜션 옆에 집을 마련하고 남편과 농사를 짓고 남은 생을 보낼 노후 계획까지 세워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발생한 강릉 산불이 모든 걸 바꿔놨다.
심상찮은 상황임을 느낀 건 밭에서 일하던 오전 9시 경이었다. 김 씨는 “연기가 자꾸 나더니 갑자기 뒷산 소나무에 불이 붙는 게 보였다“고 했다. 곧장 집으로 돌아온 그는 눈이 좋지 않은 남편을 데리고 불이 번지지 않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강풍에 불이 빠르게 번지며 입구를 막았다.
이어 연기까지 집안으로 순식간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김 씨는 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차에 탈 수 있었다. 연기를 들이마셔 혼미한 상태였다.하지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전 씨는 불이 난 집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는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없다는 말에 안도하며 두 아들을 보내 남편이 어딨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온 소식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김 씨는 “거짓말 같다”며 “나 때문에 남편이 그렇게 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면서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날 화재로 전 씨가 목숨을 잃었고, 주민 등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 축구장 530개 면적에 해당하는 임야 등 379㏊이 피해를 입었고 주택과 펜션 등 100채가 소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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