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손’이 꽃을 건네자…“사랑해” 상처 보듬는 손님들 [따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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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2월 9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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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외톨이, 어르신, 외모 콤플렉스 직원 채용
‘카페곰손’ 손호재 대표
2월 중 카페 운영 종료하지만 곧 재 오픈 예정

곰손이 손님에게 음료와 장미꽃을 건네주고 있다. 인스타그램
곰손이 손님에게 음료와 장미꽃을 건네주고 있다. 인스타그램
출입구도 없고 테이블도 없는 카페가 있다. 동굴처럼 보이는 회색 외벽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구멍만 뚫려있다. 다가가자 복슬복슬한 ‘곰손’이 튀어나와 손을 흔든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장미꽃도 쥐여준다. 손님들은 곰에게 “고마워” “사랑해”라고 화답한다.

“살면서 ‘사랑합니다, 귀여워요’를 이렇게 많이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습니다. 행복해요.” 사실 벽 뒤에는 곰이 아닌, ‘곰손 장갑’을 낀 사람이 있다. 아직은 동굴 속에 있지만 곧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은 이들이다. 은둔 경력이 있거나 타인에게 외모 지적을 당해 상처받은 사람, 나이가 많아 폐만 끼칠까 봐 일하기 망설이던 어르신 등…곰손으로 손님들과 교감하며 사회에서 자신의 필요성을 찾아간다.

카페곰손 손호재 대표와 지난 1월 26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카페곰손 손호재 대표와 지난 1월 26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이들의 ‘방 탈출’을 돕고 싶었던 손호재 대표는 지난해 4월부터 충북 청주에서 ‘카페곰손’을 운영했다. 올해 1월 26일 인터뷰 직후 손 대표는 안타깝게도 외부 사정으로 2월 중 카페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재정비를 거쳐 추후 카페를 열 예정이다.

“그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특별한 거죠. 그들이 모두에게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일하는 이런 카페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곰손 카페는 중국 상해와 일본 오사카에서 먼저 시작됐다. 중국은 청각장애인, 일본은 대인기피증 직원들이 얼굴을 내보이지 않고 곰손으로만 외부와 소통한다. 손 대표는 “나라마다 특징을 살려서 카페를 운영하더라. 우리나라는 외모 지상주의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서 외모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도 채용하게 됐다”고 했다.

사실 그도 과거엔 사람을 외모로 평가했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할 적엔 예쁘고 잘생긴 아르바이트생을 원했다. 그런데 카페 면접자 중 한 명이 손 대표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한 친구가 프랜차이즈 카페 면접 도중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과거 외모로 인해 동료들과 사장님에게 따돌림을 받았다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죠. 저 또한 같은 기준으로 아르바이트생을 뽑고 있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상처받은 친구들이 차별받지 않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손 대표는 은둔형외톨이와 고령자도 우리 사회에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분들이 ‘사회에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페곰손을 열었다”고 밝혔다.
곰손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
카페곰손은 국내 최초 비대면 유인 카페다. 키오스크로 메뉴를 주문하면 곰손이 진동벨을 건넨다. 흑곰과 백곰, 두 마리가 있다. 손 대표는 “흑곰은 오동통하니 귀여운데 백곰은 설인 같기도 하고 조금 무섭다고 하는 어린이 손님들도 있다”며 아쉬워했다.

카페곰손 인근의 한 미용실에서 곰손 장갑 털을 다듬어줬다. 카페곰손 제공
카페곰손 인근의 한 미용실에서 곰손 장갑 털을 다듬어줬다. 카페곰손 제공
카페 취지를 알게 된 주변 상인들이 장갑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근처 사진관 사장은 “곰손을 한번 찍고 싶다”고 연락했다. 손 대표는 장난인 줄 알고 “사진관에 동물 출입 가능하냐. 저는 곰손 사진 셀프사진관에 가서 찍을 거다”고 답했다. 사진관 사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셀프사진관보다 저희가 더 잘 찍는다”며 호언장담했다고. 장갑을 끼고 열심히 포즈를 취한 덕에 귀여운 사진을 얻었다.

며칠 후 근처 미용실에선 장갑 털을 잘라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손 대표가 “저희 곰손은 털갈이 심하다”고 장난삼아 말했더니 미용사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일했던 자신의 이력을 내밀었다. 미용사의 화려한 이력에 이끌려 결국 미용실에서 털을 잘렸다. 손님들에게 깔끔하고 더 동글동글해졌다는 칭찬을 받았다.

곰손 장갑을 낀 직원들은 음료를 만든 뒤 장미꽃 한 송이와 함께 손님에게 건넨다. 손 대표는 장미꽃을 선물하는 이유에 대해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다. 오늘 하루가 행복할 일이 별로 없으니 커피를 받으면서 장미까지 받으면 찰나의 순간이지만 기분이 더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이가 곰손에게 인형을 선물하고 있다. 카페곰손 제공
아이가 곰손에게 인형을 선물하고 있다. 카페곰손 제공
곰손을 보고 좋아하는 손님도 많지만 놀라는 손님도 많다. 심지어 욕하는 손님도 있다. 손 대표는 “곰손이 처음 등장해서 진동벨을 건넬 때는 엄청 놀라면서 욕하신다. 하지만 나중에 음료랑 장미꽃을 줄 때는 ‘우와’라며 감탄사부터 터뜨리신다. ‘이거 주는 거야’라고 곰손에게 말도 걸면서 행복해하신다”고 했다. 기뻐하는 손님의 모습에 눈물을 훔친 직원도 있다. 고마움이 담긴 편지와 간식을 곰손에 쥐여주는 손님도 많다. 장미꽃에 감동한 꼬마 손님은 “곰한테 뭐라도 주고 싶다”며 열심히 뽑은 인형을 가지고 달려왔다.

손님들의 행복한 반응에 직원들도 일할 힘을 얻는다. 손 대표는 “직원들이 다들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막상 제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냐’고 물으면 ‘아니에요’라고 답하긴 하는데 얼굴은 좋아서 벌게져 있다”며 뿌듯해했다.

손님들이 카페곰손에 준 편지와 간식 등 선물. 카페곰손 제공
손님들이 카페곰손에 준 편지와 간식 등 선물. 카페곰손 제공

“늙은이라고 아무도 안 좋아했는데…사랑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카페곰손을 거쳐 갔다.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려웠던 대인기피증 20대 친구, 귀가 잘 들리지 않는 70대 어르신 등이 이곳에서 일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임명호 교수는 “사회를 위한 봉사,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힐링에도 도움이 된다. 선행효과라고 타인을 돕는 역할을 하면 자존감이 향상되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손 대표가 처음 카페를 열기로 결심한 직후, 직원들을 구하기 쉽진 않았다. 어르신을 채용할 때는 무작정 길거리에서 폐지 줍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어르신들이 카페에서 일하며 최저임금을 받아도 폐지를 줍는 것보단 많이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폐지 줍는 어르신 앞에 가서 “카페에서 일하실 의향 있으시냐”고 대뜸 물었다. 돌아온 건 “제정신이냐” “상자 줍게 저리 가라”는 문전박대였다.

결국 구인·구직사이트에서 70세 이상 어르신들을 찾았다. 그렇게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처음 할아버지는 고용노동부에서 알선해준 곳이 있다며 거절했지만, 일주일 후 손 대표에게 “혹시 아직 자리가 있냐”고 연락했다. 할아버지는 먼저 알선받은 곳에서 “이렇게 나이가 많으신 줄 몰랐다”며 입사 첫날 퇴사를 통보받았다고 한다.

카페곰손에서 일하는 직원. 곰손장갑을 끼고 바깥의 손님에게 음료를 건넨다. 카페곰손 제공
카페곰손에서 일하는 직원. 곰손장갑을 끼고 바깥의 손님에게 음료를 건넨다. 카페곰손 제공
퇴사의 아픔이 컸기에 카페에서 일하기도 두려웠다. “나 같은 노인이 커피를 주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손 대표는 “얼굴을 내밀지 않고 곰손으로 음료를 주는 콘셉트의 카페다. 오셔서 편안하게 일하셔도 된다. 아직 사회에 기여하실 수 있는 나이시지 않냐”고 용기를 북돋웠다.

할아버지는 카페에서 일하며 “나도 아직 할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카페 벽에는 음료를 받을 때 ‘사랑합니다’라고 말해달라고 적혀 있다. 매일 많은 손님이 사랑한다고 해주니 할아버지는 항상 출근 시간만 기다렸다.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손 대표는 “제가 할아버지께 ‘뭐 하시는 거냐. 빨리 사랑한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라도 한 통 보내라’고 그랬다”며 웃었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준 카페”
은둔형외톨이나 외모로 상처받은 직원들을 구하긴 더 어려웠다. 청년마음건강센터 이효철 센터장에 따르면 은둔형외톨이는 말 그대로 스스로 고립·은둔해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를 찾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이 있다.

손 대표도 “제가 모집할 분들은 분명히 자기 신분을 밝히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익명의 플랫폼을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틀려도 되고 간혹 실수도 합니다. 다만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는 분이라면 카페곰손의 가족이 되어주세요”라고 적었다.

공고를 보고 지원한 A 씨는 사람들의 외모 지적으로 상처받은 경험이 있었지만, 카페곰손에서 일하며 자신감을 찾아 퇴사했다. 손 대표는 A 씨의 멘토를 자처했다. 그는 “사람이 ‘예쁘다 예쁘다’고 해주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처럼 그 친구에게 자신감을 많이 가지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손 대표는 “본인이 잘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그 친구에게 ‘너 잘났다’고 이야기해줬다”며 “A 씨가 옷을 좋아했는데 더 잘 어울릴 만한 옷을 추천해주거나 좀 더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주려고 했다. 본인이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싶다고 고민 상담을 하면 이것저것 도전해보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카페곰손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곰툰’. 카페곰손 제공
카페곰손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곰툰’. 카페곰손 제공
점점 집안에 자신을 고립시켰던 은둔형외톨이 B 씨는 이 카페에서 ‘밝음’을 되찾았다. B 씨는 대학교에서 과 대표를 할 정도로 활발했으나 고집이 조금 있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학교에서 무얼 시도하려고 할 때마다 친구들은 “쟤 걔네. 같이 하지 말자”고 했다. 이제 졸업만 앞둔 상황에서 대체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주로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학교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너무 힘겨웠다. 자신의 고집 때문에 사회에서 모두에게 피해를 줄 거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손 대표와의 첫 만남에서는 눈물을 터뜨렸다. 화도 나고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느낌이었다.

손 대표는 “B 씨를 처음 봤을 때는 어두운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해가 떠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B 씨는 제가 카페와 관련해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하면 곱씹어 보더니 이 카페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에 대한 판단까지 내렸다. 무언가 이끌어가려고 하는 게 이 친구의 장점인데 그걸 다른 사람들은 단점으로 봤던 것 같다”고 했다.

‘쓸모 없는 사람’이라며 자책했던 B 씨는 이젠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긴다. 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김영근 교수는 “카페에서 일하는 행위를 통해 생산성이 증가하고, 곰손으로 타인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곰손카페가 많아질수록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도 늘어난다
카페곰손을 찾은 손님이 곰손과 손을 맞대고 있다. 카페곰손 제공
카페곰손을 찾은 손님이 곰손과 손을 맞대고 있다. 카페곰손 제공
자신을 노출하지 않은 채 사회와의 접촉을 시도하는 방식은 타인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방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손 대표가 카페곰손을 통해 이뤄내고자 했던 이들의 ‘방 탈출’이다. 김 교수는 “은둔형외톨이는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 매우 민감하며 이로 인한 수치심이 방으로 들어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곰손이라는 아이템을 활용해 일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은둔형외톨이를 방 밖으로 나오게 하는데 매력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급여를 받으면서 실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하기에 자기효능감도 높아진다. 청년마음센터 이효철 센터장은 “자기효능감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건강한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손 대표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는 “다시 이런 카페를 열 계획이긴 하지만 외부사정으로 인해 현재 운영 중인 카페곰손을 정리하게 돼 무척 아쉽다. 카페곰손이 테이크아웃 형식이고 곰손 하나만으로 소통하다 보니 매출의 한계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사회에 ‘베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많은 분이 카페곰손을 열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더 많은 친구를 돕고 싶지만 저 혼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국에 카페곰손 같은 공간이 생겨서 사회 취약자들이 설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만약 주변에 은둔형외톨이가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주세요. “세상으로 나와야 해”라는 적극적인 지적보다는 “많이 힘들지, 좀 더 기다려볼까”와 같이 감정적으로 공감해주세요. 은둔형외톨이에게는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있지만 세상이 두려운 것입니다.
–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임명호 교수

지속적인 관심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은둔형외톨이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은 부모교육, 가족상담 등을 통해 은둔형외톨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합니다. 상담기관이나 지역사회 정책 등을 소개해 필요시 적극적으로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김영근 교수

청년마음건강센터의 ‘동물매개개입’ ‘취업교육’ 등을 소개해주세요. 서울시에서도 마음건강 지원사업, 마음건강비전센터 등의 서비스 확대를 준비 중입니다. 은둔형외톨이를 발굴해 알맞은 도움을 받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청년마음건강센터 아산청년마인드링크 이효철 센터장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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