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불바다로, 휘발유-흉기 샀다”…‘대구 방화범’ 1월에 범행 암시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3일 15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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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과 소방관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이 대구 수성구 범어동 우정법원빌딩
 2층 방화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대구=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경찰관과 소방관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이 대구 수성구 범어동 우정법원빌딩 2층 방화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대구=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대구 변호사 사무실 화재 사건의 방화범 천모 씨(53)가 개인 컴퓨터에 “변호사 사무실을 불바다로 만들고자 오래전에 휘발유와 식칼을 구입했다”며 범행을 암시하는 듯한 글을 남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건물 관리를 소홀히 해 피해가 커졌다고 판단하고 건물주 등을 업무상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대구경찰청은 13일 오전 대구 변호사 사무실 화재 사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9일 이후 한 달여 동안 수사해온 경찰은 천 씨에 의한 방화 살인으로 결론지었다. 다만 천 씨가 사건 당시 현장에서 사망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경찰에 따르면 천 씨는 지난달 9일 오전 10시 54분경 대구 수성구 범어동 우정법원빌딩에 들어가 2층으로 진입한 뒤 변호사 사무실로 이어지는 복도에서부터 휘발유를 뿌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어 천 씨는 배 변호사 사무실인 203호로 들어가 휘발유를 뿌리고 다시 불을 붙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실제 사건 현장에선 천 씨가 휘발유를 담았던 유리병 3개와 흉기가 발견됐다. 천 씨를 포함한 사망자 7명은 화재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사로 밝혀졌으며 이 가운데 피해자 시신 2구에서는 흉기에 찔린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사망자 2명은 흉기에 의한 손상이 있었으나 직접 사인은 아니었다. 천 씨가 피해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위협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천 씨는 민사소송에서 계속 패소하면서 상대측 변호인인 배모 변호사(72)가 재판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생각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출신인 배 변호사가 전관예우(前官禮遇) 등을 통해 재판에서 유리한 혜택을 받았다고 오해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천 씨가 휘발유와 흉기를 구입한 정확한 시점과 구입처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천 씨 개인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에 대한 포렌식 조사를 통해 천 씨가 배 변호사에 대한 앙심을 품고 복수할 목적으로 올해 1월 이전에 휘발유와 흉기를 구입한 것을 확인했다. 천 씨가 남긴 일기 형태의 문서 파일에는 “변호사 사무실을 불바다로 만들고자 오래전에 휘발유와 식칼을 구입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 글은 천 씨가 올해 1월에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천 씨가 자신이 투자한 시행사와 모두 5건의 소송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배 변호사가 상대측 변호인을 맡은 재판 3건에서 잇따라 패하면서 앙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한다”며 “천 씨가 지난해 6,7월 두 차례에 걸쳐 배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특히 천 씨가 사건 당일 있었던 재판에서 패한 뒤 방화 감행을 결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사건 당일 있었던 재판은 배 변호사가 상대편 변호인을 맡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의 악연이 시작된 투자 관련 민사소송과 관련이 있었다”며 “이 재판까지 패소해서 결정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와 함께 불이 난 우정법원빌딩 건물주인 60대 A 씨와 건물관리책임자 2명, 소방점검자 2명 등 모두 5명을 소방시설법 및 건축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상 등 혐의로 입건했다. 평소 비상구로 통하는 통로와 유도등을 다른 변호사 사무실 벽 등으로 가로막은 탓에 피해자들이 대피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들 5명을 조만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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