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이 서러운 ‘고딩엄마’…“보호자 없다니까 입원 거절”

  • 뉴시스
  • 입력 2022년 7월 13일 0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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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청소년 산모가 출산하는 아동 수는 매년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다수 아동이 입양 또는 양육시설에 위탁되지만, 자녀를 직접 양육하는 부모도 늘고 있다.

13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청소년 부모는 대부분 원가족과 관계가 소원해 출산·양육 과정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미혼모가 되는 경우도 많다. 아이를 기르느라 직업을 갖지 못해 학업중단·빈곤·양육 삼중고에 시달린다.

정부는 청소년 부모를 위한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 뒀지만 홍보가 부족해 접근성이 떨어진다. 아직 어린 청소년이란 특성을 고려한 적극적 밀착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호자 없어 출산 거부…민간시설 도움받아”

19살 여성 A씨는 지난 5월27일 민간 미혼모 보호시설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낳았다. 메스꺼움이나 배부름이 없어 임신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임신 7개월 째에야 인지했다.

같은 학교 선배였던 친부는 출산을 반대했지만, A씨는 낙태는 살인이라는 생각에 낳기로 결심했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와 연락이 끊기고 아버지는 따로 재혼해 왕래가 거의 없어서 임신 과정을 혼자 견뎌야 했다.

홀로 찾은 산부인과에서는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했다. A씨 인터넷 검색으로 미혼모 보호시설을 찾아 시설의 도움을 받아 출산할 수 있었다. 지금은 보호시설에 거주하며 미혼모를 위한 긴급임시주택을 알아보고 있다. 이 과정에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

A씨는 “아이를 낳기 위해 보호자를 구하는 게 가장 급했다. 네이버에 미혼모센터를 검색해서 정보를 찾았다”며 “출산 비용은 아이 아빠가 아이를 지우라며 보내준 200만원을 사용했고, 분유나 기저귀 같은 생필품은 시설에서 계속 지원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어떤 지원을 해주는지 검색을 해도 잘 나오지 않았고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시설의 안내로 영아수당과 양육비를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학교에 다시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산모 의료비·양육비 지원 있지만…“주민센터도 몰라”

A씨 같은 사례는 드물지 않다. A씨를 직접 지원한 단체는 출산 과정에서 고립되는 청소년 산모가 많고, 지원책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 옹호사업팀 오형근 과장은 “지난해 70~80명의 청소년 부모를 지원했는데 90% 이상은 원가정 부모님이 이혼했거나 불화가 있다. 부모님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만 19세 미만 산모에게 120만원 내에서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중위소득 60% 이하 청소년 한부모 가정에 월 35만원의 아동양육비를 지급한다. 부모가 학업이나 취업활동을 하면 월 10만원을 추가로 준다.

그러나 고등학생 연령대에 불과한 이들이 혜택을 찾아보고 직접 신청하긴 쉽지 않다. 오 과장은 “정부의 정책 홍보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민센터에서조차 담당 공무원이 ‘청소년 부모’란 단어를 모른다”며 “LH 임대주택을 신청하려 해도 공인인증서가 필요한데, 청소년은 이런 개념이 없어서 옆에서 하나 하나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양육에 모든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청소년 부모에겐 돌봄서비스도 절실하다. 정부는 한부모 가정에 연간 최대 840시간의 아이돌봄서비스를 지원하는데, 한 달 45시간 수준에 불과해 아기를 맡기고 일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모텔이나 찜질방을 전전하며 아이를 키우기도 한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만 24세 이하 청소년 부모 12%가 집과 보호시설 외 다른 장소에서 육아 경험이 있었다. 정책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제도 접근성 떨어져…“SNS로 홍보하고 가정방문서비스 제공해야”

정부는 정책 수혜자와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여성가족부는 이번 달부터 청소년 한부모 ‘자립지원패키지’ 시범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양육, 취업 등 각종 정보를 안내하고 정부서비스를 연계해주는 사업이다.

취약·위기가족 사례관리 대상에 청소년부모를 포함하는 ‘통합사례관리 특화지원’ 기관도 지난해 88개소에서 올해 93개소로 확대했다. 다만 청소년 부모 당사자가 직접 지원기관에 신청해야 하는 점은 여전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발간한 ‘10대 청소년미혼모 고립 해소’ 보고서에서 “제도 접근성의 공백으로 인해 생활고로 3일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청소년 임산부가 발견되거나,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무작정 아이를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적극 행정의 일환으로 가정방문서비스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과 영국은 자녀가 만 2세가 될 때까지 청소년 미혼모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자녀의 발육상태를 살피고 청소년부모의 정서적 안정, 학업, 교육훈련, 취업 등을 지원하는 제도가 정착돼 있다.

청소년 부모에 대한 맞춤형 홍보도 필요하다. SNS 검색으로 스스로 보호시설에 입소하는 청소년 미혼모들이 있는 것을 볼 때, 청소년이 자주 접하는 채널에 홍보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청소년 산모가 자녀를 출생신고하는 과정에서도 정책 대상자를 발굴할 수 있다”며 정부 역할을 주문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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