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칠듯 치솟는 화염 두렵지만, 주민 생각에 호스 못 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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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강원 산불]나흘째 산불과 사투 중인 소방관들

7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 금강송 군락지 경계에서 진화대원이 방화선을 구축하고 있다. 산불은 한때 군락지 500m 앞까지 근접했다. 울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7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 금강송 군락지 경계에서 진화대원이 방화선을 구축하고 있다. 산불은 한때 군락지 500m 앞까지 근접했다. 울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안 두렵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주민들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7일 오전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 산불 진화 현장. 올해 임관한 안기범 소방사(27·울진119안전센터)는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든 비탈길에서 꿈틀거리는 호스를 잡고 온몸으로 버텼다. 헬기가 접근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주택가 인근 야산을 태우는 불길이 마을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 그의 임무. 다행히 불길이 조금씩 사그라지자 매캐한 연기가 능선을 가득 메웠다. 그제야 한숨 돌린 안 소방사의 얼굴은 그을음범벅이었다.

안 소방사는 이달 3일 배치받고 다음 날 바로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근무 하루 만에 평생 잊지 못할 화마와 마주한 것. 그는 “처음 출동했을 때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이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시뻘건 화염이 치솟아 오르는데 금방이라도 몸을 덮칠 것 같았다”고 돌이켰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고 4일째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사명감으로 버티는 중이다.

안 소방사처럼 화재 현장 곳곳에서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고 역대 2번째 규모의 산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전남에서 지원을 왔다는 윤장군 소방사(29·강진소방서)는 7일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 진압현장에서 소방차를 운전하며 쉴 새 없이 물을 퍼 나르고 있었다. 소방차에 2800L의 물을 채우지만 15분이면 바닥을 드러내 4km 떨어진 소방서를 하루에도 10여 차례 오간다. 윤 소방사는 “소방차에 물을 채우면 운전이 쉽지 않다. 농로도 좁아서 거의 곡예운전”이라며 “위험하다는 생각보다 빨리 가서 불을 꺼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역시 화성리에서 만난 영덕 의용소방대 소속 이진우 씨(51)는 낙엽을 끌어 모으는 갈퀴를 지팡이 삼아 화재 현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잔불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신발 바닥부터 보였다. 이 씨는 “10시간 넘게 잔불정리를 하면 신발이며 옷가지가 성한 곳이 없다.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발바닥이 후끈거리지만, 집을 잃은 주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울진=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울진=남건우 기자 woo@donga.com
#산불#소방관#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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