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성폭력 연구 판사들, 성범죄 전담 재판부로…서울중앙지법 주요 사건 재판장 대거 교체[법조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7일 10시 04분


코멘트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2021.7.19/뉴스1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2021.7.19/뉴스1
서울중앙지법이 소속 판사들의 재판부 배치를 결정하는 사무분담을 마무리하면서 주요 사건 재판장이 대거 교체됐다. 특히 형사부의 성범죄 전담 재판부와 영장 전담 재판부에 법원 내 젠더법연구회에서 활동하는 부장판사들이 배치돼 “가해자 뿐만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의 관점에서도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외국인 전담 재판부에는 난민 등 외국인 인권에 대한 이해가 높은 부장판사가 배치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을 맡은 재판부에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을 언급했던 부장판사가 배치돼 논란이 일고 있다.

● 형사합의부 14개 재판부 중 12개 재판장 교체
17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서울중앙지법 ‘법관 사무분담 및 개정일람표’에 따르면 주요 형사사건을 맡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14개 재판부 중 12개 재판부의 재판장이 교체됐다.

총 4개의 성범죄 전담 재판부 중 3개 재판부의 재판장은 법원 내에서 여성, 아동 등 사회적 약자가 겪는 법적 문제에 대한 연구를 이어온 젠더법연구회(회장 이숙연 서울고법 판사)와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회장 오경미 대법관)’에서 활동하는 판사들이 배치됐다. 이 중 형사합의26부에 배치된 젠더법연구회 출신 정진아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1기)는 지난해 신숙희 부산고법 판사가 회장을 맡을 때 연구회 간사로 활동했다. 이 재판부는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접근금치 조치를 받자 앙심을 품고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병찬(35) 재판을 맡고 있다.

성범죄와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합의29부 재판장으로 배치된 김승정 부장판사(27기)도 젠더법연구회 소속이다. 외국인, 성범죄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합의30부에는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 소속인 김동현 부장판사(48·30기)가 배치됐다.

성범죄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등을 결정하는 영장 전담 재판부에는 최근 젠더법연구회에서 펴낸 ‘젠더판례백선’의 발간위원장을 맡았던 김정민 부장판사(49·29기)가 배치됐다.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남성 판사의 경우 성범죄 전담 재판부에서 1, 2년 근무해야 피해자의 어려운 처지와 범죄 피해를 입게 된 맥락 등을 깊이 이해하게 되는데 젠더법연구회에서 연구를 해온 재판장의 경우 부임 즉시 피고인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관점에서도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 등이 판사의 소속 재판부를 결정하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재판을 위한 고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외국인 인권 보고서 작성했던 판사가 외국인 전담 재판부
또 외국인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합의30부의 김동현 부장판사는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법연구회(회장 정계선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에서 활동하며 난민 등 외국인 인권에 대한 이해가 높다. 김 부장판사는 올초 ‘난민인정심사기간의 장기간 지연과 취업활동을 이유로 한 강제퇴거의 위법성’이란 제목의 판례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보고서를 통해 “난민신청자에게 생계비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서 취업활동조차 막는 것은 난민신청자의 생존을 난민 지원 비정부단체나 자선단체 등의 호의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며, 사실상 난민신청자를 범법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 이재용 부회장 재판부에 ‘최순실 국정농단’ 언급 판사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심을 담당하는 형사합의25부에는 박정길 부장판사(56·29기)가 배치돼 논란이 됐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달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수사 단계인 2019년 3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산하기관 임원의) 일괄사직서 청구 및 표적감사 관련 혐의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해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됐던 사정이 있다”며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의사를 확인했다고 볼 여지도 있는 사정도 있다”고 이례적으로 설명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 조국·울산시장 선거개입·대장동 등 주요 사건 재판장 교체
이밖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맡은 형사합의21부에는 김정곤 부장판사(48·31기)가 새로 합류했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의혹 사건을 맡은 형사합의22부에는 이준철 부장판사(29기)가 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으로 기소된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에 대한 재판을 맡은 형사합의23부에는 조병구 부장판사(28기)가 배치됐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맡은 형사합의32·36부에는 김현순(29기) 조승우(30기) 방윤섭(30기) 부장판사가 새로 배치돼 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된 대등재판부가 신설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을 맡은 형사합의28·35부는 그대로 유지됐다.

또 선거 및 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합의27부에는 김옥곤 부장판사(30기), 외국인·성범죄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합의31부에 이중민 부장판사(30기), 선거·경제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합의34부에는 강규태 부장판사(30기)가 새로 배치됐다. 형사합의24부에는 조용래 부장판사(31기)가 남았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