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삶을 비누로 ‘BE NEW’… 아이티에 비누 만드는 법 가르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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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선월드와이드
비누 한 개 사기도 어려운 빈민촌
제작법 배워 비누 팔고 질병예방도

비누를 만들어 가족과 동네를 지키는 로제트 메잘린.
비누를 만들어 가족과 동네를 지키는 로제트 메잘린.
비누 한 개, 며칠을 벌어야 살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누는 필수품이 됐다. 하지만 최빈국인 아이티의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누 한 개를 사려면 2주에서 한 달을 벌어야 한다.

아이티의 수도권 빈민촌인 시테솔레이에서 여섯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주부 로제트.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교사인 남편이 가족을 부양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하고 2020년 3월에 학교가 문을 닫은 후로는 소득이 끊겼다. 전에는 여섯 가족이 하루에 두 끼를 먹었는데, 이제는 한 끼를 먹는다. 그마저도 학급에 어려운 두 학생을 집에 데려와 함께 나눠 먹고 있다.

한 끼 식사는 콩밥, 스파게티, 빵과 커피로 구성된다. 소득이 있었을 때는 고기나 야채, 과일을 사먹기도 했는데 더는 그럴 형편이 안 된다. 그마저도 가족이 늘면서 기존의 한 달분의 음식으로 보름도 버티기 힘들다. 로제트는 “희망이 없다. 정부는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힘든 건 끈끈했던 이웃이 점점 서로를 돕기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제트는 동네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비누 제작 워크숍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석한 워크숍에는 로제트 외에도 20여 명의 여성이 모여 있었다. 워크숍을 개최한 컨선월드와이드 직원들은 고형과 액상 비누 제작법을 가르쳐 줬다. 컨선월드와이드는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면서 동시에 팬데믹으로 일자리를 잃은 극빈층의 생계를 지원하기 위해 비누 제작 워크숍을 기획했다.

로제트는 워크숍에서 배운 기술로 일주일 만에 비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3명이 모여 함께 비누를 제작하고, 거리에서 팔았다. 필요한 자금은 컨선월드와이드에서 지원한 지원금을 사용했다. 가끔 시내로 나가기도 했지만, 물건을 내놓으면 바로 팔려서 시테솔레이 안에서 팔 물건도 부족했다. 빈민촌 사람들에게 비누는 손 씻기는 물론이고 빨래에도 필요했다.

비누 제작 워크숍에 참석한 아이티 여성들. 컨선월드와이드 제공
비누 제작 워크숍에 참석한 아이티 여성들. 컨선월드와이드 제공
로제트는 “비누는 제 가족을 먹이고 이웃을 도울 돈을 벌어주고 있다. 앞으로 이 비누 사업을 더 키워서 빈민촌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둘째를 임신하기 전까지 노점상을 운영했던 로제트는 이제 현수막까지 만들며 마케팅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던 중 올해 8월, 아이티에는 또다시 7.2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다행히 로제트가 살고 있는 시테솔레이에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대통령 암살로 불안정한 정부는 지진과 연이은 열대성 태풍의 피해를 극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엔은 지진으로 인해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인구가 65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준모 컨선월드와이드 한국대표는 “전 세계 14억 명이 깨끗한 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개발 국가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손세정제 대신에 비누는 코로나19와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무기다. 지진과 극빈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아이티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는 1994년부터 27년간 아이티에서 활동해 왔다. 인구의 대부분이 국토의 5%인 수도권에 밀집해 살고 있어서 빈민촌, 실업, 교육, 식량 안보 등 문제도 악화되고 있다. 이에 컨선월드와이드는 지역 주민과 정부와 협력해 기본 수요를 충족하면서 생계 역량을 개발하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아이티 지진 긴급구호 모금은 홈페이지나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로 문의할 수 있다.


조선희 기자 hee31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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