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뜨기로 한 날, 그는 가든파티를 열었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입력 2021-04-18 09:00수정 2021-04-1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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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죽음의 자기결정권 인정하는 고도의 복지사회
‘삶의 질’ 중시, 무의미한 고통의 과정 스스로 멈출 권리 인정
소극적 안락사에 그친 한국의 연명의료결정법
화창했던 2012년 3월의 그날, 은퇴한 네덜란드의 수학교사 윌 피서 씨는 자택에서 가든파티를 열었다. 친지와 친구들 20여 명이 모여들어 오후 1시부터 시작된 파티는 화기애애했다. 피서 씨는 마치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것처럼 샴페인 잔을 들고 건배를 외쳤고 모두가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D데이’, 파티 열고 친지들에게 ‘굿바이’
3시 경 주치의가 방문해 집안으로 들어가자 피서 부부는 손님들 앞에 섰다. 그때 피서 씨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암(癌) 발병 뒤부터 멀리했던 담배였다. “이게 최후의 한모금”이라며 연기를 들이마신 그는 만족스러운 듯 불을 끄고는 손님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럼 여러분, 저는 지금부터 침대로 가서 죽겠습니다. 끝까지 파티를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평소 허세가 많던 그여서, 장난기 어린 인사말로 받아들인 손님들은 파티를 이어갔다. 친지 몇 명만이 조용히 침실로 불려가 주치의가 피서 씨에게 안락사 주사를 놓는 장면을 지켜봤다. 향년 66세.

그는 8개월 전 평편상피암 진단을 받았다. 64세까지 교사로 일하다 막 은퇴해 인생을 즐기려던 차였지만 암의 진행속도는 무정하게도 빨랐다. 왼쪽턱뼈 주변에 생긴 암은 불과 반년 만에 목구멍 쪽으로 퍼져 엄청난 통증과 호흡곤란을 가져왔다. 마지막 두 달은 모르핀을 처방받아 격통을 견뎌야만 했다. 그의 부인은 늘 ‘마이페이스’였던 남편을 회고하며 “잔소리꾼이 사라져 후련할 때도 있다”고 말하다간 눈물을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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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 씨가 주최한 최후의 가든파티. 가운데 빨간 스웨터 입은 사람이 피서 씨. 그는 이 촬영으로부터 1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위).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고 치사약을 마시는 피텔스마 씨. 그의 케이스는 네덜란드에서 치매가 안락사 대상이냐 여부를 놓고 논란을 불렀다. ‘안락사를 이루기까지’에 소개된 사진들이다.


○온 가족에게 둘러싸여 작별한 할아버지
네덜란드의 시프 피텔스마 씨는 사망 13년 전 심근경색을 이겨냈고 4년 전 발병한 피부암과도 싸워냈지만 10개월 전 인지장애(치매) 판정을 받자 안락사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굳은 그의 의지를 자녀들이 말릴 방도는 없었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 방식은 두 가지다. 의사에게 약물을 주사 맞는 방법과 스스로 치사량의 약을 마시는 것. 약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려 대부분이 주사를 택하지만 그는 후자를 택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한다’는 원칙을 관철했다.

2013년 11월 그날 오전 10시경 아들딸과 손자들까지 일가 26명이 그의 집에 모였다. 모두 함께 가벼운 식사를 마친 뒤 돌아가며 포옹과 키스를 나눴다. 12시 경 가족들이 둘러싼 거실 탁자에 의사가 약이 든 컵을 놓았다. 그는 컵을 손에 쥐고는 아내에게 “그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아내가 불러주는 추억의 시내트라 노래를 들으며 순식간에 약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이제 잠이 오네”라며 앉아있던 소파에 모로 누웠다. 향년 79세였다.

네덜란드에서는 2016년 한해에 6091명이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 전체 사망자의 약 4%에 해당한다. 안락사 대상이 되려면 회복의 가망이 없고 견디기 어려운 통증을 가졌다는 점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의 경우 치매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해당되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주치의가 안락사에 찬성할 수 없다며 집행을 거부하자 그는 기관을 통해 다른 의사를 소개받아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다. 그의 안락사를 도운 의사는 “통증에는 육체적인 것 외에 정신적인 것도 있다”며 “‘견디기 어려운 통증’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으므로 의사는 괴로워하는 환자를 도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죽을 권리’ 보장해주는 것도 인권

일본인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宮下洋一)는 2015년부터 2년 간 세계 각국의 안락사 현장을 취재해 ‘안락사를 이루기까지(쇼가쿠칸·小學館)’라는 책을 펴냈다. 위의 사례들은 이 책에서 상세히 르포한 내용의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초판은 2017년 12월 말 나왔다. 2019년에는 이 책의 속편으로 일본인 중 처음으로 스위스에서 안락사한 고지마 미나 씨 케이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한 ‘안락사를 이뤄낸 일본인’을 펴냈다. 이 책은 ‘11월 28일 조력자살’(아토포스)이란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본이 출간돼 있다.

죽음의 영역은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미야시타가 안락사가 벌어지는 현장에 몇번이나 직접 참석하고 안락사를 16시간 앞둔 환자를 인터뷰하는 등 촘촘한 취재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스위스의 의사 에리카 프레지크의 적극적 협조가 있었다.

프레지크는 자살조력 단체 ‘라이프서클’의 대표로, 뇌졸중으로 쓰러져 점차 자유를 잃어가던 부친의 자살을 도운 뒤 이쪽 길로 들어섰다. 부친이 불편한 몸으로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흔적을 보며 “사랑하는 아버지가 행복하게 돌아가시는 것을 돕고 싶었다”고 한다. 그 뒤 6년 간 디그니타스에서 일하다가 2011년 자신의 단체를 세웠다. 라이프서클을 통해서는 연간 약 80건의 조력자살이 이뤄지는데 외국인 희망자도 적지 않다. 그는 “인생 마무리에 대해서는 본인의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안락사를 이루기까지’ 표지.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2년간 안락사가 시행되는 유럽과 미국의 현장을 취재해 책에 담았다.


‘11월 28일 조력자살’의 표지. 스위스에서 안락사한 최초의 일본인을 취재했다. 원제목은 ‘안락사를 이뤄낸 일본인’이다.


○개념정리부터 필요한 ‘안락사’ ‘존엄사’
흔히 ‘안락사’ ‘존엄사’라 쓰이는 단어는 사전적 정의가 통일되지 않았다. 나라마다 문화권마다 같은 단어지만 내용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 조력자살, 소극적 안락사로 나뉘는데,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의 생명을 ‘타인(의사)’이 끊는 것, 조력자살은 타인의 도움으로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소극적 안락사는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중 연명치료 중지에서 의사의 조력자살까지를 존엄사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세계에서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이 있다. 스위스 캐나다 미국의 오리건,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일부 주에서는 조력자살이 허용된다. 네덜란드는 2001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안락사법, 일명 ‘요청에 의한 생명의 종언 및 자살조력법’을 제정했다. 이어 2002년 벨기에에서도 안락사가 허용됐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는 치매와 정신질환자의 안락사도 허용하고 있다.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안락사를 지원하는 방식도 비용도 모두 조금씩 다르다. 스위스는 조력자살만 허용되는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의 안락사를 허용한다. 비용은 라이프서클의 경우 스위스인은 4000스위스프랑(약 485만 원), 외국인은 화장과 운반 등의 비용 탓에 1만 스위스프랑(약 1210만 원) 정도 든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전액 의료보험처리가 된다. 벨기에는 의사의 주사에 의한 안락사만 허용되는데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라이프서클의 프레지크 대표는 생면부지의 일본인 저널리스트인 미야시타 씨의 취재를 적극 돕는 이유로 “각자 자기 나라에서 이같은 활동이 확산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갈수록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외국인들의 의뢰가 늘어 곤혹스럽다는 얘기다.

지난해 3월 서울신문은 지금까지 한국인 2명이 스위스 디그니타스를 통해 안락사로 세상을 떴다고 전하기도 했다.

○최고의 복지국가이기에 허용되는 안락사
스위스건 네덜란드건 안락사를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들의 특징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복지국가라는 점이다. 정확히는 고부담 고복지 국가다.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떼어갈 정도로 세부담이 매우 크지만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환자가 생활비나 의료비 때문에 근심걱정할 일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누군가가 굳이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은 그만큼 고통없는 삶의 마무리가 간절하다는 뜻이 된다.

또 하나 이들 국가가 합리적 사고방식을 가졌고 인권과 ‘삶의 질’을 중시한다는 점도 영향이 큰 듯하다. 이들은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인권이라 본다. 가족간의 유대가 끈끈하고 개인보다 핏줄을 우선시하는 아시아의 문화권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야시타는 저서에서 안락사를 감행하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많더라고 했다. 가령 치매 진단을 이유로 안락사를 택한 피텔스마 씨는 평소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싯구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 나는 내 영혼의 지휘관”을 늘 외우곤 했다는데 그의 마지막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이미지가 느껴진다.

○한계 많은 한국의 ‘존엄사’법
우리나라에서 흔히 ‘웰다잉법’ ‘존엄사법’이라 말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뜻한다. 나을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죽음의 과정을 연장하는 불필요한 행위를 하지 말자는 내용이다. 임종 단계 환자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인공호흡기 착용같은 연명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다. 2018년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고 2019년 3월부터 ‘연명의료’ 대상에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가 추가됐다.

이 법 시행 이래 3년 여 간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택한 사람은 15만 여 명에 달했다. 훗날 치료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연명의료를 거절한다는 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놓은 사람도 4월 현재 87만 명으로 3년 전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다만 본인 의지로 죽음을 연장하는 것은 거부할 수는 있지만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법조계에서 존엄사법 제정 촉구 움직임
지난해 7월 200여 변호사들의 모임인 ‘착한법만드는사람들’이 존엄사법 입법을 촉구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존엄사 관련해 제대로 된 법이 발의되지 않아 ‘사각지대’로 남았으며 이 때문에 스위스 같은 안락사 허용 국가를 찾아가는 한국인이 생겨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보다 환자의 자기운명결정권의 행사폭을 넓히는 ‘존엄사법’을 만들어 관련 내용을 다듬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다만 한국의 경우처럼 생계를 걱정해야 할 노인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는 안락사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갑자기 늘어난 수명에 별다른 준비없이 맞게 될 노후를 걱정하는 한국에서 자칫 안락사는 손쉬운 도피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이 법 자체가 ‘사회에 부담 주지 말고 죽으라’는 압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결국 안락사가 허용되려면 확고한 개인주의와 인간 권리에 대한 존중 문화, 탄탄한 복지 시스템이 전제가 돼야 한다. 좀더 많은 돈과 노력과 사회적 성숙이 필요한 것이다.

죽음의 자기 결정권은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인가, 혹은 자연 섭리에 반하는 오만인가. 답을 내기는 쉽지 않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타인의 의견에도 귀기울이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은 그 자체가 사회적 성숙 과정이기도 하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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