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수청 ‘SFO’ 與-檢 진실게임…학계, 검찰 손 들어줬다

  • 뉴스1
  • 입력 2021년 3월 4일 0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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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오후 대구고등검찰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3.3/뉴스1 © News1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오후 대구고등검찰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3.3/뉴스1 © News1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을 골자로 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법안을 놓고 여권과 검찰이 똑같은 주요 선진국의 사법체계를 놓고도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놓고 있다.

여권에서는 중수청이 중대범죄를 다루는 영국의 중대범죄수사청(SFO)이 모델이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한다. 반면 검찰은 SFO는 수사와 기소권을 통합한 기구이며, 세계 주요 선진국들에서도 검사의 직접 수사권은 유지되고 있다고 반박하는 모양새다.

같은 사례를 놓고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학계에서는 검경수사권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는데, 중수청이 설치되면 부정적 측면이 더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권 “수사·기소 분리는 세계적 추세”

여권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은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도입해 실행 중에 있는, 세계적 추세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수청 설치법 제정안을 발의한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7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모든 선진국에서 검찰이 수사기관화 돼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도 없다”며 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의원은 “특별수사기관인 미국의 FBI가 대표적이고, 우리의 중수청은 영국의 SFO를 모델로 한다”며 “영국에는 이미 중대범죄를 다루는 특별수사기관이 설치돼 있다. 우리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도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영국과 독일 사례를 들면서 중수청 설치가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의 경우 1985년 경찰에 통합돼 있던 수사·기소권을 분리해 경찰이 수사를, 검사는 기소 여부만을 결정하고 경찰 수사에 조언하는 역할만 한다고 했다.

또 검사뿐 아니라 법무부장관, 국무부장관 등 여러 기관에서 기소권을 갖고 있는 등 수사권뿐 아니라 기소권도 권력분산과 전문성 차원에서 분산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했다.

추 장관은 또 “수사·기소가 분리되더라도 검사는 경찰의 수사에 대한 적법성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므로 당연히 이를 위한 보충적, 보완적 수사권을 가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도 같은날 페이스북에 “(수사청이 설치되더라도) 기소, 영장청구 및 이를 위한 보완수사요구 권한은 검찰이 보유한다”고 추 장관과 맥을 같이 하는 주장을 했다.

정리하자면 검사는 기소만을 담당하게 하는 것인 세계적 흐름이며, 직접 수사권이 아닌 보충적·보완적 수사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檢 “與주장, 진실 왜곡…모르고 하는 말”

반면 검찰은 해외의 경우도 중대사건의 경우 검사가 직접수사권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여당 측 설명과 달리 영국의 SFO는 수사·기소 분리의 한계를 느끼고 이를 합쳐 수사 효율성을 높이려고 만든 기구라고 강조했다.

구승모 대검찰청 국제협력담당관은 지난달 26일 검찰내부망 이프로스에 “외국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 기초해 국가 형사사법제도 개정을 성급히 결정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구 담당관은 미국 연방검찰청과 주검찰청 모두 직접수사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법무부 연방검사 매뉴얼에 따르면 연방검사장은 Δ간첩·테러 등 연방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 Δ연방공무원의 범죄 Δ주요 경제범죄 등 연방범죄를 직접수사하거나 연방수사기관에 수사착수를 지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주검찰총장도 사법경찰관들에 대한 직접 감독 권한을 갖으면서 범죄수사 및 수사방법을 지시할 수 있다고 했다. 지방검찰청의 경우도 별도 수사국을 둬 민감하고 복잡한 사건의 경우 검찰청에서 직접 인지해 수사를 하거나, 경찰수사 초기부터 주임검사를 정해 수사에 적극 개입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경우도 1985년부터 검찰을 창설해 경찰이 독점하고 있던 수사·기소권을 나눠 검사가 기소와 공소유지를 맡게 됐지만 일반사건의 경우이며, 중대사건의 경우 수사와 기소·기소유지 기능을 통합한 중대범죄수사청(SFO)에서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전날(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수청을 영국 중대범죄수사청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여당 주장에 대해 ”진실을 왜곡했거나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윤 총장은 ”범죄가 나날이 지능화·전문화·대형화하자 검사가 공소유지만 하는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한 일“이라며 ”수사·기소를 분리한 게 아니라 수사·기소를 융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계 ”검찰개혁 시즌1도 안 끝났는데 시즌2 시작은 성급“

이처럼 같은 해외 선례를 놓고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학계에서는 중수청이 영국의 SFO를 모델로 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특정범죄 수사 대상이라는 점에서 두 기관이 유사할 뿐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중수청과 반대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영국 SFO의 경우 수사기소를 통합해 수사 효율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라며 ”그 목적은 유럽에서 가장 큰 문제인 테러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테러 자금을 추적하는데 기존 시스템에 한계가 있어 특별수사청을 만든 것“이라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측면에서 도입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영미형사법에 정통한 박용철 서강대 로스쿨 교수도 ”중수청이라는 것이 특정중대범죄에 대해서만 수사를 하도록 한 점에서는 영국의 SFO가 모델인 점은 맞다“며 수사와 기소 분리 차원이 아닌 특수사건을 수사하는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교수들은 미국의 경우 경찰이 수사권을, 검사는 기소 여부만을 결정하고 수사에 조언만 한다는 여권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되는 의견을 냈다.

정 교수는 미국 검찰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직접 수사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예로 뉴욕남부연방검찰청의 경우 테러 및 국제마약범죄, 증권·상품사기 등을 관할하는 수사부를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도 ”미국에서도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고 하지만 수사와 기소는 설 유기적으로 다 연결이 돼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말하는 일방적 지휘는 아니지만 수사과정이 공판과정과 상호 연결이 되기 때문에 검사가 수사과정에 관여를 한다. 수사와 기소가 완전히 무 자르듯 완전히 분리돼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교수들은 형사사법시스템과 연혁이 완전히 다른 나라의 사례를 가져와 도입 찬반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제도 도입이 기존 우리나라 형사사법 시스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검찰을 공소청으로 만들면 개정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한 검사의 보완수사요구권, 재수사요구권 이런 것들이 결국 다 없어질 것“이라며 ”기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서 또 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수청을 만들면 국가수사본부와 관할이 경합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관할이 똑같은 중복된 별도의 기구의 수사청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도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시즌1’이 제대로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중수청 설립이라는 사법체계의 큰 변화를 주는 제도 도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경 수사권조정과 공수처가 제대로 잘 정착됐는지 판단하고 나서 ‘검찰개혁 시즌2’를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지금의 변화는 불확정적 요소를 더하는, 너무 급격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이순욱 중앙대 로스쿨 교수도 ‘개정 검찰청법 시행에 따른 검찰의 중요범죄 대응 역량 강화 방안 고찰’ 대검의 외부보고서에서 별도의 수사기관을 만드는 것에 부정적 의견을 냈다.

이 교수는 보고서에서 ”우리 검찰은 직접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SFO과 같이 검찰, 경찰이 아닌 별도의 새로운 수사기관을 만들 필요는 없다“며 ”곧 공수처까지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많은 별도의 국가권력기관을 창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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