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D-5]“정시, 수시 떠나 학생 위한 ‘진짜’ 정책 없나요?”

특별취재팀 입력 2020-11-28 03:00수정 2020-11-2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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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이 만나다] <5·1부 끝> ‘대입 정시확대 정책’ 두 고교생의 엇갈린 시선
정시? 수시? 공정한 답 좀 찾아주세요
두 고교생이 말하는 대학입시제도
고등학생 오승현 군(왼쪽)과 이민서 군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대화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앞으로 5일.’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한자리에 마주 앉는 무대.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 기획 ‘극과 극이 만나다’의 5회 주제는 ‘대학 입시 제도’다. 이번 주제는 동아일보 정치·사회 성향 조사 페이지에 참여한 6세 아이의 엄마 정진숙 씨(36)가 제안해 선정됐다.

세부 쟁점은 ‘대입 정시 비중 확대’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관련 입시 의혹이 불거진 뒤 정부는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중을 기존 20∼30%에서 40%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대입 제도 개편안을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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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교생은 대입을 준비하며 갈림길에 선다. 수능 중심의 정시냐, 내신 성적 및 비교과활동 위주의 수시냐. ‘정시 파이터(싸움꾼)’와 ‘수시 파이터’란 신조어도 있을 정도다. 무엇이 더 공정한 전형인가를 둘러싼 양측의 주장은 첨예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대입 준비생들이 스스로를 ‘파이터’라고 부르며 입시 전쟁에 뛰어드는 우리네 교육 제도를 정상이라 볼 수 있을까.

5회는 극과 극이 만나다 최초로 10대 청소년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고등학생 오승현 군(18)과 이민서 군(16)이 주인공. 학부모 정진숙 씨와 김혜경 씨(49), 학원 강사 정승호 씨(45)와 고등학교 교사 김진우 씨(51)가 일대일로 만났다.

▼ ‘대입 정시확대 정책’ 두 고교생의 엇갈린 시선 ▼

컴퓨터공학도 꿈꾸는 전주 고3 오승현 군
“한날한시 모여 같은 조건 시험, 공정하잖아요”
지역 현안에 큰 관심 서울 고1 이민서 군
“수능으론 부족… 평가 다양한 수시가 객관적”

전북 전주시에 사는 고3 오승현 군(왼쪽)과 서울 양천구 목동에 거주하는 고1 이민서 군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야외 벤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대입 정시 비중 확대 정책에 대해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생들이 자신만의 꿈과 진로를 설계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가을 기운이 만연하면서도 쌀쌀했던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로. 한옥이 즐비한 북촌로를 따라 올라가면 정독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900년 고종이 칙령을 내려 건립한 최초의 관립중등학교 경기고가 있던 자리다. 이날따라 도서관 주변은 울긋불긋한 낙엽들이 조화롭게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그 언젠가는 학생들이 뛰어놀던 운동장으로 쓰였을 마당. 1년 내내 우리를 괴롭힌 마스크 틈으로 맑은 공기가 들이찼다.

이 역사적인 공간에서 ‘극과 극이 만나다’ 처음으로 고등학생 2명이 무대에 올랐다. 전북 전주에서 올라온 오승현 군(18)과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민서 군(16). 차분히 도서관 앞 벤치에 앉은 모습이 의젓하면서도, 교복을 입은 품새가 봄 잎사귀처럼 풋풋했다.

고교 3학년인 승현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약 3주 앞으로 다가왔던 시점.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간에 KTX를 타고 2시간이나 걸리는 서울까지 오는 게 무리라고 봤다. 하지만 승현은 또래와 대입 제도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겠단 의지가 무척 강했다. “수능은 전국에 있는 모든 학생이 한날한시에 같은 조건으로 시험을 보는 거잖아요. 그것보다 더 공정한 평가 방식이 어디 있겠어요.” 컴퓨터공학과를 지망한다는 이과생답게 말투는 간결하면서도 명확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간 민서가 사는 지역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목동 학군이다. 입시 경쟁은 중학교,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치열하게 시작됐다.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민서는 동아일보 정치·사회성향조사 페이지에 직접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 “수능 점수만으로 학과를 결정하는 게 공정한 제도일까요. 학생을 다양한 기준으로 살펴보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수시 전형이 오히려 객관적이라 생각합니다.” 딱 부러지는 게 누구 못지않았다.

앞선 조사에서 서로 전혀 다른 성향을 나타냈던 두 아이. 이들은 대입제도를 바라보는 시각도 전혀 달랐다. 백년대계(百年大計)는커녕 일년대계(一年大計)도 못 된다는 조롱을 받는 한국의 교육제도.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정독도서관에서 그들은 어떤 얘기를 나눌까.

○ 수시 vs 정시… 진짜 학생을 위한 길이란

도서관 교실로 자리를 옮겨 간단한 인사를 나눈 승현과 민서. ‘대입 정시 비중 확대 정책’이란 화두를 던지자 잠시 적막이 흘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눈치였다.

먼저 말문을 뗀 건 승현이었다. “학교마다 다른 시험지와 수행평가 등으로 내신 성적을 매기고 학생부를 작성하잖아요. 이렇게 제각각 산출된 내신 성적, 학생부 기록을 반영하는 수시 전형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차분하게 듣던 민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은 수능 점수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학생의 가치가 있다고 봐요.” 승현과 눈이 마주치자 민서는 살짝 안경을 고쳐 썼다. “학종 등 수시 전형에는 선생님들이 평가한 학생의 인성, 성실성, 열정 등이 반영돼요. 대학으로서는 시험지 답안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학생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거죠.”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승현. “평균적으로 담임선생님 1명이 20∼30명의 학생을 지켜보면서 학생부 기록을 써 주잖아요. 하지만 모든 학생을 꼼꼼하고 깊게 관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거든요. 게다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새로운 접근법을 꺼내든다. “고교 내신 성적은 한 번 나오면 돌이킬 수가 없어요. 반면 수능은 1년이 지나면 시험을 다시 준비해 원점에서 평가를 받는 거라 재도전의 기회가 된다고 보거든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던 민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길게는 초중고교 12년 동안 대입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수능 당일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시험을 망치게 되면 모두 물거품이죠. 재수, 3수까지 해야 합니다. 대학 입시가 시험 ‘한 방’에 결정되는데, 1년 뒤에 다시 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걸 재도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요?”

갑자기 바깥 어디선가 세찬 바람이 불어왔는지 창문이 파르르 흔들렸다.

“수능 문제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출제하잖아요. 조작이나 비리의 가능성이 가장 낮다고 봅니다. 또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최고 수준의 문제가 나오죠. 주관적인 평가가 반영되는 수시보다는 정시 비중이 더 확대돼야 해요.”(승현)

“수능은 단순히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을 평가 방식이에요. 수능 점수가 그다지 좋지 않더라도 평소 진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학생들의 실력까지 제대로 평가하려면 수시 비중이 더 높아져야 합니다.”(민서)

○ “학교 교육은 우리의 꿈을 찾도록 도와줘야”


전혀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듯 보였던 두 사람은 묘한 한마디에서 사뭇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바로 ‘꿈’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였다. 사전 인터뷰에서 민서는 2번 정도 언급했지만 승현은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 하지만 한번 대화에 등장한 꿈은 계속해서 두 학생을 잇는 실마리가 됐다.

먼저 실타래를 푼 건 의외로 승현이었다. “학교 친구들 보면 대부분 특별한 ‘꿈’이 없다고 해요. 주변 형이나 누나들도 ‘그냥 취업 잘되는 대학에 가라’는 얘기만 하죠.”

무심코 한숨을 쉬던 민서.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공부하면서 많이 힘들어요. 어른들은 자신만의 꿈을 가지라고 하죠. 근데 동시에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고도 하잖아요. 대학 입시도 솔직히 정시든 수시든 다 마찬가지죠. 둘 다 학생들을 ‘피 말리게’ 하는 제도거든요.”

“그 표현, 정말 공감이 가네요.” 승현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대한민국 대학입시제도는 학생들에게 경쟁을 계속 강요하잖아요. 학생이 자기만의 꿈과 진로를 찾을 수 있는 구조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민서는 심호흡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속내를 꺼냈다. “교육 정책이라는 건 뭔가 철학을 가지고 쭉 이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도가 수시로 바뀌니깐 학생들이 얼마나 어렵고 혼란스러운지 아세요. 아마 어른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승현도 맞장구를 쳤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교육 전문가 10여 명이 모여 토론을 하는 콘텐츠를 봤던 기억이 나요. 정말 황당했어요. 그 자리에 진짜 당사자인 학생은 1명도 없었거든요. 실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학생도 없이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걸까요.” 민서도 재차 거든다. “맞아요. 교육 제도를 논의할 때 보면 학생은 늘 빠져 있죠.”

다시 가라앉은 공기. 민서가 먼저 묻는다. “형은 꿈이 뭐예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개발자가 되고 싶어요.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난리가 났을 때 약국별로 공적 마스크 재고를 알 수 있도록 한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었어요.”(승현)

“저는 지역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아요. 실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 동네,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죠.”(민서)

대화 내내 당당하고 차분하게 의견을 전달하던 아이들. 하지만 승현과 민서는 자신들도 모르게 처음 만났던 때보다 훨씬 밝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분명 ‘꿈’ 이야기를 꺼낸 뒤부터였다. 각자 그리는 미래는 달랐지만 둘 다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통한 덕분일까. 2시간 동안 내달린 대화가 끝날 무렵,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의견을 내고 있었다.

“정시건 수시건 모두 떠나 학생들이 자신만의 꿈과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도와주는, ‘진짜’ 학생을 위한 교육 정책은 없을까요?”

○ 특별취재팀

△지민구 이소연 신지환(이상 사회부) 조건희 기자

△방선영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4학년, 허원미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졸업, 디지털뉴스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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