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고뇌 끝에 확진자 정보 공개”… 인권 법학자 “희생양 될까 우려”

특별취재팀 입력 2020-10-24 03:00수정 2020-10-2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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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극과 극이 만나다]
코로나 방역 지휘 광역단체장-인권법 전문가
원희룡 제주지사(왼쪽)와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6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옥상에서 광화문광장을 배경으로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동문이지만 코로나19 확진자 정보 공개에 대한 생각은 전혀 달랐다. 광역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방역 실무를 총괄하는 원 지사와 인권 전문 법학자인 오 교수를 ‘극과 극이 만나다’ 무대로 초대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8일 전 세계 누적 확진자 4000만 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무서운 위세로, 언제 끝난다는 기약도 없이.

양극이 한자리에 마주보고 앉는 무대.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 기획 ‘극과 극이 만나다’는 13일 세 번째 주제로 코로나19를 다뤘다. 세부 쟁점은 ‘확진자에 대한 정보 공개’.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완치된 시민과 잘못 공개된 정보 탓에 식당을 폐업해야 했던 자영업자, 수강생 중에 확진자가 발생해 문을 닫은 영어학원 원장 등 코로나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이들의 생생한 증언에 너도나도 의견을 보내왔다.

이번 3회는 유독 “나도 이 주제에 할 말이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긴 2020년 코로나19에 대해 할 말 없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이에 ‘극과 극이 만나다’는 처음으로 내려졌던 커튼을 다시 올리고 앙코르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시 한번 이 주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다시 막이 오른 무대에 오른 이들은, 굳이 따지면 전문가들의 만남이다. 코로나19 방역 현장을 진두지휘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인권 보호의 가치를 법적인 측면에서 들여다본 학자. 원희룡 제주지사(56)와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55)가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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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지사와 오 교수는 서울대 법대 82, 84학번 동문. 하지만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연구팀이 만든 정치·사회 성향 조사 결과만큼이나 이 이슈에 대해 확연히 다른 입장이었다. 제주도는 그간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 등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온 지자체 가운데 하나인 반면 경기도 인권위원장을 지낸 오 교수는 이에 대해 무척 비판적이다. 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각자 가방에서 두꺼운 준비 자료를 꺼내놓고는 거침없이 말했다.

▽원희룡 지사=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1월 말이었죠. 중국 우한 출신 관광객들이 제주를 다녀갔는데, 귀국한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거예요. 시끌시끌했죠. 폐쇄회로(CC)TV를 추적해 해당 관광객들의 숙소부터 들렀던 가게나 약국 등까지 전부 다 소독한 뒤 당시 정보 공개는 정말 제한적으로만 했어요. 근데 그때부터 확진자 동선 등을 제대로 공개하라고 도청 홈페이지에 댓글과 민원이 빗발쳤습니다. 버티고 또 버텼지만 결국 민의에 따라 정보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어요.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떠는 도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확진자 개인정보가 일부 드러나더라도 도민 다수의 안정을 위해 투명한 공개를 결정한 거죠.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의 방침도 따로 없을 때여서 저희로서도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오동석 교수=
고충은 이해하지만, 전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동선 등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확진자가 들른 장소에서 함께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잖아요. 하지만 방역당국은 CCTV와 신용카드 사용 명세, 방문자 명부 등을 통해 대부분의 접촉자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감염 위험이 높은 밀집된 공간이 아니라면 동선 공개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 아닐까요. 또 제주도가 도민들의 요구가 커서 적극적인 정보 공개를 결정했다고 말씀하신 것도 수긍이 안 되네요. 방역 실무를 맡고 있는 지자체가 져야 할 책임을 확진자와 자영업자 등 일반 도민에게 돌리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자칫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사회 구성원 다수의 두려움과 공포를 덜어내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어요.

▽원 지사=
우려하는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역학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생깁니다. 대표적으로 확진자 중에는 동선 등을 감추고 거짓말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불과 며칠 전 일인데도 동선이나 상황을 제대로 기억 못 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방역을 위해 일분일초도 허비할 수 없는 입장에선 난감합니다. 누구와 같이 있었는지, 어디를 다녀갔는지 알아야 추가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럴 때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공개해 주면 이중 삼중으로 ‘팩트 체크’를 할 수 있거든요. 시민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나 휴대전화 메신저 등을 이용해 요긴한 제보도 해줄 수 있고요.

▽오 교수=
정말 안타까운 건, 구체적인 동선 공개가 되면 꼭 온라인에서 확진자 등의 신상을 특정해서 누구인지 찾아내는 분들도 생긴다는 겁니다.

▽원 지사=네. 정말 귀신같이 찾아내시더라고요.

▽오 교수=
지자체나 방역당국으로선 어쩔 수 없는 조치라 하지만 이렇게 자신은 원치 않는 개인 정보가 알려지는 확진자는 누가 보호해줄 수 있나요. 특히 앞으로는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감염 위험이 높은 곳만 제한적으로 공개해야 합니다. 해당 장소를 다녀간 사람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조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원 지사=많은 도민분들이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으면 주변 가게와 주민들이 덩달아 피해를 본다고요. 오히려 확진자가 들렀던 장소를 ‘콕’ 집어서 특정해 주면, 주변 가게들은 기피 대상이 되지 않고 정상적인 영업이 가능하다는 거죠. 물론 공개된 가게들이 영업에 문제가 생기는 게 사실입니다. 저희도 정말 마음이 아프죠. 고통 분담 차원에서 공무원들이 가서 식사도 하고 위로물품도 전달해 드리고 하는데, 이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아요. 방역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정보를 공개한 것이지만 항상 송구스럽습니다.

▽오 교수=
동선 공개로 영업에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을 위한 보상 제도가 없는 점도 문제라 봅니다. 정보는 지자체와 방역당국이 공개했는데, 자영업자가 알아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돼버리는 셈이에요.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더라고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들어가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법 개정안을 살펴봤는데, 일상이 무너진 시민들을 위한 근본적인 논의는 엿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준비한 자료만큼 치열하게 이어지던 대화. 잠깐의 숨을 고른 뒤 다시 조금씩 예열이 되던 순간, 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4, 5월 이태원 클럽발(發) 집단감염과 8월 15일 광복절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 집단감염에 대한 얘기가 나오며 공감대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시민들의 휴대전화 기지국 기록을 수집한 조치에 대해서는 공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 교수=휴대전화 기록 수집은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 발상이라 봅니다. 이미 범죄 수사를 할 때라도 기지국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거든요.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무작위로 시민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위험한 조치만큼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씀드립니다.

▽원 지사=
그 대목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한술 더 떠서 기지국 정보를 수집한 조치는 위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광복절에 광화문에 있는 서점에 갔다는 이유로 일반 시민의 위치 정보를 마음대로 수집하는 건 명백한 인권 침해예요. 게다가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고 반강제적인 조치를 하는 것은 엄청난 위협이죠.

▽오 교수=요즘 식당이나 카페 등에 비치된 명부에 개인정보를 적을 때는 헌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적어 내긴 하지만 이러한 침해까지 감수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원 지사=공감합니다. 저도 펜으로 개인정보를 쓸 때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가명을 써야 하나 싶을 정도로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시간 40분 동안 이어진 대화 뒤 함께 인근 일민미술관 옥상에 오른 원 지사와 오 교수. 제주와 경기 수원에서 오랜만에 서울에 왔다는 두 사람은 맑은 하늘에 탁 트인 광화문광장을 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와” 하고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바깥에서 맞이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네요.”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의 입꼬리에 옅은 미소가 머금어진 듯했다.

○ 특별취재팀

▽지민구 이소연 한성희 신지환(이상 사회부) 조건희 기자
▽방선영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4학년, 허원미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졸업, 디지털뉴스팀 인턴기자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특별취재팀 dongatalks@donga.com

극과 극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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