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 줄어 복지 부담 덜어” vs “대폭 증세 없인 재정 감당 못해”

세종=남건우 기자 입력 2020-07-11 03:00수정 2020-07-11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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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국내외 전문가 8인이 보는 ‘기본소득의 명암’ “세금을 크게 올리지 않곤 기본소득을 감당할 수 없다.”

“기본소득 실험해 보니 확실히 삶의 질은 개선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제도다. 아예 일자리를 잃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도록 돕자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이상적인 제도처럼 보이지만 현재까지 국가 단위로 기본소득을 도입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본보는 핀란드, 캐나다, 인도 등 기본소득 실험을 해봤거나 미국, 영국, 한국 등 논의 중인 국가의 실험 설계자와 학자 8명을 e메일과 전화로 인터뷰해 기본소득의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봤다. 학자들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이상적인 개념일 뿐이라는 비판을 제기하는 한편, 삶의 질 향상이라는 긍정적 효과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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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소득, 결국 재원 확보가 문제

10일 본보가 인터뷰한 세계 각국의 기본소득 실험 설계자들과 학자들은 재정 부담을 두고 의견이 극명히 엇갈렸다. 이미 기본소득 실험을 마친 국가에서조차 소득이 높거나 안정된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까지 무작정 돈을 주는 게 맞느냐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지급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전혀 현실성 없는 대책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미국의 마르코 아눈지아타 전 GE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정치권에서 18세 이상 모든 미국인에게 매달 1000달러(약 120만 원)를 준다는 구호가 나왔는데 여기에 드는 돈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5% 정도”라며 “세금을 크게 올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헤이키 힐라모 핀란드 헬싱키대 교수도 “보편적인 기본소득이 아닌 저소득층이나 실업자를 대상으로 소득을 지원해야 재정이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기본소득 실험을 직접 설계했던 이들은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도입할 수도 있고, 기본소득이 빈곤층을 감소시켜 오히려 복지지출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기본소득 실험을 주도했던 휴 시걸 전 캐나다 연방 상원의원은 “빈곤층 확대는 질병과 낮은 교육수준, 범죄 등으로 이어져 결국 납세자들의 부담이 된다”며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빈곤층이 줄어 결과적으로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배스대의 루크 마티넬리 기본소득 연구원 역시 “기본소득은 분명 재정에 부담이지만 동시에 의료와 범죄 등에 드는 비용을 줄일 것”이라고 했다. 핀란드 투르쿠대의 올리 칸가스 교수는 “국가재정이 염려되면 일단은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쪽으로 하면 된다”고 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선 결국엔 증세가 불가피한데 증세의 범위를 어디까지 가져가는지도 논쟁의 핵심이다. 기본소득에 우호적인 전문가들은 고소득자를 타깃으로 한 ‘부자 증세’로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인다. 마티넬리 연구원은 “증세를 한다면 부유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소득 재분배 차원에서 낫다”며 “부유세, 부동산세, 환경세 등이 증세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자 증세가 오히려 기본소득에 대한 반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증세 자체에 따른 부작용이 기본소득의 장점을 상쇄한다는 것이다. 인도의 기본소득 실험을 설계한 사라트 다발라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부위원장은 “부유층에만 증세하면 반발이 심할 수 있기 때문에 세금 체계를 개선하거나 낭비되는 세금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증세가 어렵다면 기존 복지제도를 개선해 남는 비용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차선책으로 꼽히지만 이 역시 현실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복지 수혜를 받고 있는 이들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어서다. 아눈지아타 전 GE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며 기존 복지제도를 없애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기본소득의 연속성이 담보될 수 있느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다발라 부위원장은 “자녀들을 좋은 학교로 전학시켰던 부모들이 2년간의 기본소득 실험이 끝나니 아이들을 다시 원래 학교로 돌려보내더라”고 했다. 시걸 전 상원의원은 “가장 어려운 건 새로 선출되는 정부가 기본소득 지급을 이어갈지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삶의 질 높일 것” vs “근로의욕 낮출 것”

재원을 마련해 기본소득을 도입한다고 해도 과연 기본소득이 사회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논쟁거리다. 핀란드는 2017년부터 2년간 2000명에게 매달 560유로(약 76만 원)를,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2017년 4월부터 1년 동안 만 18∼64세 저소득층 4000명에게 매달 1415캐나다달러(약 125만 원)를 주는 등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기본소득 실험을 설계한 이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효과에 무게를 뒀다. 칸가스 교수는 “기본소득 수혜자들은 스트레스가 적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커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했다. 시걸 전 상원의원은 “설문조사 결과 기본소득을 받은 뒤에도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자리를 찾아야겠다는 동기를 느꼈다는 사람이 78.9%나 됐다”며 “수혜자들은 기본소득을 받고도 일을 계속했고 더 나은 교육을 받는 데 기본소득을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대로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낮춘다는 지적도 있다. 사람들이 꺼리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배관공, 청소부 등의 직종에서 구인난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불신과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받는 데 대한 거부감 등도 극복해야 할 요소로 지적됐다.

힐라모 교수는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참가자들의 취업일수가 6일 증가하는 데 그치는 등 당초 기대했던 고용 효과는 미미했다”고 설명했다. 이병태 KAIST 경영공학부 교수도 “최저임금 인상이 일정 부분 근로 의욕을 낮추는 것처럼 기본소득은 사람들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눈지아타 전 GE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각에선 기본소득이 사람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줄 거라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에 재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윤석명 한국사회보건연구원 연구위원은 “삶의 질은 사람마다 평가기준이 다른 주관적 요소라 기본소득으로 인한 삶의 질 변화를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세종=남건우 기자 woo@donga.com
#기본소득#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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