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학생부 쓸게 없어요” “공교육 의지해 뒤처지는 느낌”

강동웅 기자 , 박재명 기자 입력 2020-05-23 03:00수정 2020-05-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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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코로나 학습공백’으로 대입 불리한 高3
22일 서울 종로구 덕성여고 3학년 학생들이 거리를 유지하며 등교하고 있다. 올해 고3들은 등교 수업이 장기간 미뤄지면서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을 비롯한 대학 입시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하필 우리 때 이런 일이….” 올해 고교 3학년의 진로에 ‘먹구름’이 끼었다. 인터넷 대입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입시 정보보다 고3의 미래를 걱정하는 글이 더 많다. 뒤늦게 등교해 학교생활기록부를 채우려 해봐도 역부족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직업계고 학생들은 채용은커녕 현장실습할 곳도 찾기 어렵다. 대학이나 직장에 먼저 진출한 선배와의 경쟁도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고3의 고민을 들어 봤다.》


“1학기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는 ‘원격수업 열심히 들었다’밖에 쓸 말이 없을 것 같아요.”

서울 성북구의 고교 3학년 윤모 군(18)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준비하려던 윤 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등교 수업이 수차례 연기되면서 고민이 커졌다. 그는 “코로나19가 번지면서 기관들이 문을 닫아 봉사활동도 할 수 없다”며 “왜 하필 우리가 고3일 때 이런 일이 터진 건지 모르겠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대입 수험생들이 많이 찾는 입시 관련 인터넷 카페마다 베스트 게시물은 입시 정보가 아닌 ‘고3의 불만’ 관련 글이 차지하고 있다. 수만휘 카페의 최근 일주일 글만 봐도 ‘올해 고3은 큰일 났다’는 내용의 글이 100건이 넘는다. 고3 등교를 하루 앞둔 19일에는 “정부가 고3을 ‘실험 쥐’로 본다”는 비난글이 폭발했다. 글마다 ‘절망’ ‘불안’ ‘우울’ 같은 단어가 가득하다.

무엇이 지금 고3을 불안하고 절망스럽게 만드는 걸까. 직접적인 건 등교가 늦어지면서 재수생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진 대입 환경이다. 상대적 불리함을 만회하기 위해 지금 고3들은 재수, 삼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입시만이 아니다. 취업이 급선무인 특성화고 학생들은 좁아진 채용문에 좌절한다. 고3들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장기간 취업하지 못한 ‘잃어버린 세대의 전설’이 자기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 수시도 정시도 불안한 일반계고

통상 고3은 주로 수시에 집중하는데, 올해 고3들은 수시 성패를 좌우하는 1학기 학생부가 백지다. 서울 용산구 용산고에 다니는 이현서 군(18)은 “1학기 동아리 활동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남은 1학기 기간이 짧아서 얼마나 질 좋은 내용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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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에 내세울 게 없다 보니 불안한 마음에 정시 대비까지 하는 고3도 늘고 있다. 수도권의 한 고교 3학년인 김모 군(18)은 “2학년 때까지 수시 학종만 죽어라고 대비해 왔는데 1차 개학 연기 발표 이후로 정시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며 “평소엔 그래도 하루 5시간은 잤는데 요즘은 2시간 정도밖에 못 잔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고3 사이에도 피해 의식이 생기고 있다. 대구의 고3 이모 군(18)은 “서울 대치동 학생들은 학교에 안 가는 동안 고액 과외랑 맞춤형 관리를 받아서 이전보다 준비를 더 많이 했다고 들었다”며 “정부 말을 믿고 ‘2주 뒤’ ‘2주 뒤’ 하면서 등교만 기다린 학생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선 2월 등교 연기 발표가 나자마자 소규모 그룹 과외가 속속 꾸려졌다. 강도 높은 학습 일정을 소화하고, 자체 제작한 모의고사도 치르는 식이다. 학교와 학원이 문을 닫아도 소수를 위한 ‘24시간 관리 체제 과외’는 지속됐다.


○ 시험도 취업도 막힌 특성화고

얼어붙은 취업 시장도 고3을 불안하게 한다. 특히 특성화고 학생들은 올해 취업이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라고 호소한다. 일선 특성화고에 따르면 학교로 전달되는 기업 채용 공고가 지난해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서울 은평구 선일이비즈니스고 3학년 최경원 양(17)은 1월부터 준비한 컴퓨터활용능력 시험이 세 차례 미뤄져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했다. 원격수업만으로 1분 스피치,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등을 준비하다 보니 어려움도 많다. 최 양은 “준비가 부족한 데다 기업의 채용까지 줄었다. 친구들끼리 ‘우린 희망이 없다’는 얘기만 주고받는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특성화고에 다니면서도 취업을 포기하고 진학을 하려는 학생들도 있다. 지방의 한 특성화고 3학년 최모 군(18)은 최근 진로 문제로 수차례 가족회의를 열었다. 최 군은 “빨리 취업하고 싶어서 특성화고에 왔는데 올해는 내가 원하는 회사의 채용 계획이 없다”면서 “대학 진학도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라는 기회가 한 번이라도 있으니 기회가 한 번도 없는 취업보다 낫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들을 위한 대책을 내놓으라는 요구도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코로나19 영향으로 고졸 채용을 없애고 대졸자만 채용하겠다는 회사가 늘고 있다”며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학생의 취업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청원은 2만8750명의 동의를 얻었다.


○ 연습도 시합도 못 한 예체능고

실기수업이 입시에 직결되는 예술고 학생들은 등교 연기가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던 올 3월. 강원 강릉시 강원예술고에 고3 학부모 두 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제발 아이들에게 학교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무용, 운동 등을 하는 아이들이 집에서는 연습을 할 수 없어서 절박한 마음에 찾아온 것이었다. 박상욱 강원예술고 교장은 “너무 안타까웠지만 ‘단 한 명만 등교해도 학교 전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계원예술고 무용과에 재학 중인 임서연 양(18)은 실기수업을 충분히 받지 못해 걱정이다. 임 양은 원격수업 기간에 학교 연습 홀이 아닌 집의 나무 바닥에서 무용 동작을 연습하다 발목 부상을 겪었다. 임 양은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민간 홀을 빌려서라도 준비를 했을 텐데 집에서 훈련을 하니 나 혼자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됐다”고 말했다.

활동량이 많은 체육고는 훈련 부족과 대회 일정 연기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충남 논산시 충남체육고 김하늘 양(18)은 전공이 수영이지만 2월 이후 한 번도 수영장에 가지 못했다. 2월 김천 전국수영대회, 3월 제주 한라배수영대회, 4월 전국체고대항전이 모두 연기되면서 아무 실적도 낼 수 없었다. 김 양은 “2학년 겨울방학부터 기록을 단축하면서 실력에 불이 붙고 있던 터라 아쉬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 “정부·대학 지금이라도 협의 나서라”

교육계에서는 대학 1학년생 중에서 올해를 기회로 보고 재수에 나서는 학생이 늘면서 고3의 고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 신입생들이 집에서 원격수업을 들으며 반수를 하는 상황”이라며 “고3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수 상황인 만큼 교육당국과 대학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 교수는 “올해 수시는 각 대학이 재학생의 3학년 1학기 학생부 기록을 소폭 반영하도록 교육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역시 “코로나19로 고3 학생이 불리해진 것이 사실인 만큼 이를 보완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입학전형은 기본적으로 대학이 운영하는 것”이라며 “모집요강 추이를 보고 각 대학과 협의해 보겠다”고 설명했다.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이 고3 일부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2002년생 전체의 ‘세대 문제’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평가 제도를 유연하게 바꿔 특정 학생들만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동웅 leper@donga.com·박재명 기자

#코로나19#원격수업#고3#수시#정시#대입 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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