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영향받은 日위안부 소송, 4년 만에 첫 재판

  • 뉴시스
  • 입력 2020년 4월 24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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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주권면제 이유 소장 송달 거부
법원, 공시 송달 후 4년 만에 재판
주권면제 예외 '페리니 사건' 언급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주요 사례로 언급됐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관련 소송 첫 재판이 사건 접수 4년 만에 처음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24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첫 변론을 진행했다.

배춘희 할머니 등은 2013년 8월 일제강점기에 폭력을 사용하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위안부를 차출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각 위자료 1억원씩을 청구하는 조정 신청을 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위안부 소송이 헤이그송달협약 13조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한국 법원이 제기한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주권 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을 내세운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2016년 1월28일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고, 법원이 직권으로 ‘공시송달’한 끝에 일본 정부에 소장이 전달됐다. 공시송달은 주로 당사자 주소 등을 알 수 없거나 송달이 불가능할 경우 서류를 법원에 보관하면서 사유를 게시판에 공고해 당사자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날 열린 재판에서 배춘희 할머니 등의 대리인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는 국가 간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등은 주권 면제가 적용된다고 하지만, 당시 한반도 내에는 일본군에 대응할 무력이 없었다”며 “그래서 주권 면제가 적용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 페리니 사건’ 판결문에서 나오는 원고 측 주장과 소수의견 등을 통해 주권 면제 예외의 뒷받침 논거가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탈리아 페리니 사건은 지난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로 끌려가 강제노역한 루이제 페리니(Luigi Ferini)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내 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하고 독일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하지만 결국 독일 정부가 ICJ에 국제 소송을 제기해 이탈리아가 패소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ICJ에서도 의견이 나뉜 것으로 아는데 소수의견은 원고 측 논거의 뒷받침 자료가 될 것 같다”며 “우리 판단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배춘희 할머니 등의 다음 재판은 다음달 29일 오전 10시30분에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이 사건을 법원행정처가 개입해 각종 시나리오별 판단을 내려 보고서까지 작성한 사건 중 하나로 지목한 바 있다.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배춘희 할머니 등의 대리인 김강원 변호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은)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과연 이런 할머니들 문제가 사회 지도층들이 흥정 대상으로 삼을 만한 것인가 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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