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 고립’ 한국인 “숙소도 거부 당해…귀국 티켓 1000만원”

  • 뉴스1
  • 입력 2020년 3월 19일 06시 01분


코멘트
국경페쇄 소식이 알려진 페루 쿠스코의 모습. (독자 제공)
국경페쇄 소식이 알려진 페루 쿠스코의 모습. (독자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페루가 국경을 걸어 잠그면서 꼼짝없이 보름간 페루에 갇히게 된 한국인은 “영화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경이 폐쇄된 17일(현지시간) 0시부터 페루에 고립된 한국인 A씨(32·여)는 19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거리에는 경찰이 가득하고, 웬만하면 외출은 하지 말아야 하는 분위기”라고 현지 사정을 전했다.

여행을 직업으로 하는 A씨가 페루에 도착한 날짜는 지난 11일. 친한 동생과 함께 지난 1월부터 중남미 국가를 여행 중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코로나19’는 상상도 못했다.

일정대로라면 A씨는 18일에 아르헨티나로, 함께 여행 중인 동생은 한국으로 떠났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페루까지 덮쳤고, 중남미 국가들을 상대로 무섭게 확산됐다. A씨는 결국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갈 예정이던 태국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출국을 이틀 앞둔 16일 늦은 오후, A씨 등은 머물고 있던 쿠스코에서 관광을 위해 마추픽추로 향했다. 차를 타고 4~5시간을 달려 겨우 도착한 그곳에서 그는 마르틴 비스카라 페루대통령의 발표를 듣게 됐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마추픽추는 문을 닫았고, 관광객에게는 “돌아가라”는 말만 들려왔다. A씨 등은 급하게 기차를 잡아 타 쿠스코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페루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후 발표한 내용은 ‘국경 폐쇄’와 관련한 것이었다. 페루 대통령은 이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17일 0시를 기해 육로와 항로, 해로 모든 국경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국경을 통한 입국과 출국 모두 금지되며 페루 내 모든 사람은 외국인을 포함해 모두 15일 동안 자가 격리해야 한다. 또 전 국민은 생필품과 의약품을 사거나 병원에 갈 때만 외출할 수 있게 했다.

발표 바로 다음날 국경을 폐쇄한다는 소식에 A씨 등은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하려 했지만 비행기 노선은 적었고, 비행기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A씨는 “평소 100만원대이던 한국행 비행기표는 500만원으로, 5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결국 페루를 빠져나가지 못한 A씨 등은 당장 급한 숙소부터 구했다. A씨는 “앞으로 15일 동안 있어야 할 숙소부터 정말 ‘미친듯’ 구했다”며 “한국 대사관에도 문의했으나 이들 역시 밤 사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당황스럽다는 반응으로, 숙소는 알아서 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숙소를 구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동양인, 그중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이유에 숙소 호스트들은 쉽게 방을 내어주지 않으려 했다. A씨는 “호스트들은 언제 페루에 들어왔는지, 어디 어디를 거쳤는지를 계속해서 물었다”며 “한국에서 지난 1월에 출발했고, 그동안 경유한 곳을 모두 얘기했더니 그제서야 한참 고민한 뒤 겨우 (숙박을) 승인해줬다”고 토로했다.

A씨에 따르면 페루에 갇힌 한국인 중 상당수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A씨는 “어디서 왔는지, 언제 왔는지를 다 묻고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잠적하는 숙소도 있다”며 “페루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동양인을 대할 때 굉장히 불안해 한다는 것을 체감했던 순간”이라고 귀띔했다. A씨처럼 페루에 갇힌 한인들은 단체 카카오 채팅방을 통해 숙소는 물론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페루와 관련한 채팅방에만 500여명 이상이 참여 중이다.

A씨는 현상황에 대해 “마트와 은행, 통신과 관련해서만 외출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웬만하면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분위기”라며 “길에 경찰이 가득해서 돌아다닐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점만 문을 열었고 다른 곳은 전부 문을 닫았다”며 “(폐쇄 후) 상점으로 가서 15일 동안의 먹거리부터 비축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도 마스크는 ‘품절’이라고 했다. A씨는 “페루에 도착하자마자 마스크를 구하려고 했는데 모두 품절이라 살 수 없었다”면서 “또 다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 혹시나 마스크를 썼다 동양인 혐오 현상이 심해질까 싶어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 대통령 발표 후 거리에 나가보니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고 말했다.

앞으로 15일간의 자가격리 기간을 꼼짝없이 페루에서 보내야 하는 A씨는 “칠레나 아르헨티나처럼 2~3일 정도라도 유예기간을 주고 그 기간 안에 외국인들에게 나가라는 공지를 했다면 지금보다 나았을 텐데, 하루 안에 바로 나가라는 처사에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가장 큰 걱정은 자가격리 기간이 15일로 끝나면 다행인데, 혹시나 확진자가 더 늘어나 상황이 안 좋아질 경우 30일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18일 기준 페루의 코로나19 확진자수는 117명이다. 사망자는 없다.

우리 정부는 전세기를 동원해 우리 국민들을 페루에서 귀국시키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페루에서 귀국을 희망하는 한국인은 140명 정도인 것으로 파악했다”며 “페루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귀국이 보장될 수 있도록 (페루 측에) 요청하고 있다”며 “상황에 따라 임시항공편 투입을 검토하거나 다른 나라의 임시항공편 등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