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1000개… 죽음 부른 문자 협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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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男, 前여자친구에 만남 요구… 잠 못자게 새벽 위협 글 보내
3개월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 “장난” 주장… 2년刑 항소 기각

올해 초 광주에 살던 2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가 보낸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지인들은 모두 “전 남자친구가 숨이 막힐 정도로 문자 폭탄을 보내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억울하게 숨졌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이 숨진 여성의 휴대전화를 분석한 결과 두 사람은 지난해 4월 처음 만났고 같은 해 10월 헤어졌다. 이별 이후 전 남자친구의 행동은 집착을 넘어서 집요한 괴롭힘으로 바뀌었다. 하루 평균 400∼500개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대부분 새벽 시간대에 보낸 것으로 여성은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밝은 성격이었던 여성은 스토킹에 가까운 문자메시지를 받으면서 평소에도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전 남자친구가 ‘학교와 집, 지인들을 알고 있다. 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해 여성은 대화 상대를 차단하지도 못했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이런 사실을 털어놓지도 못했다.

수도권에서 회사를 다니던 전 남자친구는 갑작스럽게 광주로 내려와 만나달라고 했다. 만나주지 않으면 새벽에 문자메시지를 1000개 이상 보냈다. 여성은 두려움을 느꼈지만 잘 달래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과 달리 전 남자친구의 협박은 이어졌고 여성은 지인들에게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며 울먹였다.

협박은 올 1월 최고조에 달했다. 여성이 휴대전화를 받지 않자 ‘주변 사람을 해치겠다’ ‘촬영한 신체 사진을 유포하겠다’ 등 심리적 압박을 이어갔다. 여성은 결국 이런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경찰은 올 6월 전 남자친구를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전 남자친구는 경찰 조사에서 “과거 다른 여성에게도 이렇게 행동했다. 하지만 이 여성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왔고 더 이상 협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성은 전 여자친구의 심성이 착한 것을 악용해 거미줄처럼 옥죄려고 한 셈이다.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전 여자친구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난이었다’고 했다.

광주지법 형사합의 3부(부장판사 장용기)는 31일 1심의 형량이 무겁다고 한 전 남자친구의 항고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1심은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전 남자친구는 경찰 조사에서 보였던 태도와는 달리 법원에는 반성문 10여 개를 제출했다. 여성의 지인들은 엄벌해 달라며 탄원서 40여 개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과도하게 여성에게 집착했고 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했다. 여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이라고 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전 남자친구#협박성 문자메시지#성폭력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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