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관점따라 다르게 평가 가능…판단 쉽지 않다”
국가가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고(故) 조중필씨 유족과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첫 재판에서 위자료가 인정될만한 국가의 위법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민사32부(부장판사 유상재) 심리로 21일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서 국가 측은 “수사기관의 최초 공소제기는 위자료가 인정될 만큼 위법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국가 측은 “수사기관의 최초 공소제기에 대해서는 당시 1·2심 모두 범죄사실을 인정했고, 대법원에서 파기된 것”이라며 “공소제기의 위법성이 인정되려면 합리성이 없어야 한다. 합리성이 없었다면 1·2심 재판이 진행될 수 있었겠나”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1심의 위자료 산정과 공소시효도 항소 이유로 거론했다.
유족 측은 “당시 자료와 정황을 비춰볼 때 최초 공소제기가 위법하다는 것이고, 1심에서 적법하게 판단됐다”며 “소멸시효 부분은 인식하고 손해배상을 정당하게 청구할 수 없었던 사유가 있었고, 위자료 역시 수사기관의 잘못으로 진실의 발견이 늦어졌을 때 1심과 유사한 액수로 산정된 경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국가배상을 인정할 정도의 위법인지는 여러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공소제기가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었다면 공범으로 의율하지 않았는데 1·2심에서 유죄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사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사건이지만 손해배상 책임의 관점에서 보면 판단이 쉽지는 않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확대해석은 하지말라”고 설명했다.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씨는 이날 법정에 출석해 “자식은 억울하게 죽었는데 수사기관은 범인을 뒤바꿔놓았다”며 “1심은 유족을 위해 배상책임을 인정했는데 국가는 (위자료를) 안주려고 하면 국민이 억울해서 어떻게 살겠나”라고 토로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3일 서울 용산 이태원에 있는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대학생이던 조씨가 흉기에 수차례 찔려 숨진 사건이다.
검찰은 현장에 있던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만 살인 혐의로 기소하고, 아더 존 패터슨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버린 혐의로만 기소했다. 하지만 리는 1998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고, 유족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패터슨은 검찰이 출국정지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점을 이용해 1999년 8월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2009년 범죄인 인도청구를 통해 16년 만에 입국해 2011년 살인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0년 형이 확정됐다.
이에 유족은 지난해 10월 “수사당국의 부실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 발견이 늦어졌다”며 국가를 상대로 1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과 범죄인 인도청구를 적시하지 않는 등의 위법한 행위로 살인 사건의 진실 규명은 20년 가까이 지연되고 유족들의 합리적 기대가 장기간 침해됐다”며 “유족에게 총 3억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유족 측은 1심 판결을 받아들여 항소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이태원 살인사건에 대한 배상책임은 다시 한번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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