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 성범죄’ 가해 목사, 16세 소녀 까지 …“당시는 성폭력이라 생각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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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1월 8일 0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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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신도 대상 목사 ‘그루밍 성폭력’ 의혹…6일 서울 연지동 한국 기독교회관에서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
10대 신도 대상 목사 ‘그루밍 성폭력’ 의혹…6일 서울 연지동 한국 기독교회관에서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
인천 한 교회 담임목사의 아들 A 목사가 10~20대 신도 다수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과 관련해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와 이들을 대변하고 있는 정혜민 목사가 당시 벌어진 일을 방송에서 폭로했다.

신변보호를 위해 음성을 변조한 피해자는 지난 7일 YTN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와 인터뷰에서 “가해자인 목사에게 확실하게 당한 피해자는 10명 이상이며 실제 피해자는 20명이 넘을 수도 있다”라며 “A 목사는 같은 시기에 다수의 아이를 만나며 피해를 입혔다”고 털어놨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A 목사를 알게 됐다고 밝힌 피해자는 “워낙 다정하다는 소문이 나 있어서 여자아이들의 손을 잡고, 안는 등 스킨십이 많은 사람이었다”라고 회상하며 “제자 모두에게 ‘사랑한다’ ‘오늘 왜 이렇게 예쁘냐’ ‘보고 싶다’ 이런 말들을 너무 당연하게 해서 (성폭력이) 어디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 못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A 목사는 성관계를 요구하기에 앞서 둘만 있는 시간을 만들고, 안고, 뽀뽀나 키스를 한다거나, 그런 단계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이게 성폭력이구나’ 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으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성폭력이었지만 당시는 성폭력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상대가 목사님이어서 더욱 그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 목사가 다른 여학생들에게 보낸 문자를 보고 여러 명이 ‘그루밍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후 A 목사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어렸을 적 얘기를 꺼내며 동정심을 유발했다. ‘어렸을 때 삼촌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해서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데 너한테는 마음이 가서 그랬다’는 식으로 말했다”라며 “정말 존경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처음 말해줬을 때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할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A 목사는 피해 당사자를 만나 회유하는 방법으로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 A 목사와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그러나 A 목사는 ‘(다른 피해자들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단과 짜고 거짓말 하는 것이다’ ‘정말 억울하다’라며 핑계만 늘어놓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A 목사의 어머니를 만났고 그의 어머니로부터 ‘아들이 정상이 아니다’ ‘목회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등의 말을 들었지만 정작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라며 “심지어 A 목사의 아버지인 담임 목사는 마치 피해 입은 아이들이 오히려 A 목사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 마냥 얘기하며 2차 가해를 가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측을 대변하고 있는 정혜민 목사는 “1년 전에 사건을 인지하고 해당 사건을 당사자끼리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가해자 측으로부터 위협, 회유나 협박을 당해 공론화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사건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지난 4월, A 목사는 미국으로 떠났고, 해당 교회가 소속된 노회에서는 A 목사를 제명만 시켰을 뿐 면직시키지 않았다고.

정 목사는 “제명은 노회 회원이 아니라는 결정일 뿐 A 목사의 목사직 자체는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A 목사가 전도사 시절부터 몹쓸 짓을 행했다고 강조하며 “피해자 중 가장 어린 학생의 나이가 16세다. 만으로 따지면 14, 15세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루밍 성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상담을 받고, 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그루밍 성범죄는 쉽게 말해서 길들인 다음에, 피해자 아이들이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 길들인 다음에, 아이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뜻한다. 이러다 보니까 아이들이 본인이 피해자라고 인지하고 자각하는 것이 오래 걸리고 심지어는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일반 성폭력 같은 경우에는 강제성이 있는 반면에 이 그루밍 성범죄 같은 경우에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아이들이 본인이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피해자구나’ 하는 인지조차도 못 하는 경우들이 참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행법상 그루밍 성범죄를 다루기 애매한 부분이 존재한다.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A 목사와 처음으로 대면하던 날 혼란스러움을 겪었다고도 털어놨다. 정 목사는 “처음 만났던 날, A 목사가 2시간 내내 눈물을 흘리며 ‘아니다, 거짓말이다, 오해다’라고 말했다”며 “저희는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어떻게 두 시간 내내 울 수 있나 의아했다”고 밝혔다. A 목사의 거짓말을 파악하게 된 것은 피해 당사자 아이들과의 사자대면 녹음 파일 등을 통해서였다. 정 목사는 지난해 11월 30일 아버지인 담임목사와 당사자인 A 목사를 만나 “목사직을 다 내려놓고, 성 치료 기관에서 성 상담을 받고, 피해자들에게 일절 연락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A 목사 부자는 각서까지 썼지만 돌연 태도를 바꿨다. 성 치료 기관에서 A 목사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냈기 때문이다.

교계에서도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목사의 말을 믿자’는 반응이 컸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특히 교회에서 그루밍 성범죄가 일어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법적·제도적 개선을 통해 뿌리 뽑아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장연제 동아닷컴 기자 je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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