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속 아이 안고 달릴때 기억 안나… 얼굴 화상도 그땐 몰랐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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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 녹인 화마서 3세 남아 구조… 홍천소방서 영웅들이 밝힌 21분

“당신들이 영웅입니다” 28일 3세 아이를 구조한 강원 홍천소방서 소속 소방관들이 30일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동현 박종민 소방교, 김인수 소방위, 김덕성 소방교, 최재만 박동천 소방장. 홍천소방서 제공
“당신들이 영웅입니다” 28일 3세 아이를 구조한 강원 홍천소방서 소속 소방관들이 30일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동현 박종민 소방교, 김인수 소방위, 김덕성 소방교, 최재만 박동천 소방장. 홍천소방서 제공
“아이를 안고 어떻게 4층에서 뛰어내려 왔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강원 홍천군 홍천읍 빌라 4층 화재 현장에서 불길을 뚫고 들어가 3세 남자아이를 구한 홍천소방서 김인수 구조팀장(소방위)은 3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아찔했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김 팀장은 “아이를 안고 내려와 구급대원에게 인계한 다음 바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경력 28년의 베테랑 소방관에게도 이번 구조는 그만큼 급박하고 힘겨웠다.

김 팀장과 대원들은 28일 오후 5시 17분경 화재 신고가 접수되고 출동할 때부터 집에 아이가 혼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피커를 통해 아이 엄마의 다급한 육성 신고를 들었기 때문.

불길 얼마나 뜨거웠으면… 박동천 소방장의 헬멧. 뜨거운 열기에 헬멧마저 녹아내렸다. 뉴스1
불길 얼마나 뜨거웠으면… 박동천 소방장의 헬멧. 뜨거운 열기에 헬멧마저 녹아내렸다. 뉴스1
김 팀장은 “1995년 춘천의 한 산부인과 화재 현장에서 신생아 4명을 구조했던 경험이 퍼뜩 떠올랐다”며 “출동하는 내내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고 말했다.

8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4명의 인명 구조대원과 2명의 화재 진압대원은 4층 출입문을 통해 진입을 시도했다. “천장과 벽에 시뻘건 불길이 붙어 있었고 연기가 자욱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겨우 안방까지 진입한 대원들은 의식을 잃은 채 이불 위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김 팀장은 “아이가 호흡은 하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보조 마스크를 씌운 뒤 지체 없이 아이를 안고 아래로 내달렸다”고 말했다. 김 팀장이 구급대원에게 아이를 인계한 시각은 오후 5시 38분. 신고 접수 21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급처치를 받은 아이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의식을 찾았다.

김 팀장은 “그동안 1만 건이 넘는 구조 및 화재 현장을 다녔지만 이날이 가장 긴박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며 “아이가 하루빨리 퇴원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며 밝게 웃었다.

진압대원 박동천 소방장은 물을 뿌리며 구조대원들의 진입을 돕다 뺨에 가로 2cm, 세로 3cm 크기의 2도 화상을 입었다. 특수소재로 제작된 소방구조용 헬멧은 겉면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치료를 받은 박 소방장은 “진화 당시에는 상황이 너무 긴박해 다친 줄도 몰랐다”며 “화상을 입었지만 아이를 살린 것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구조대원들은 29일 오전 장난감 소방차를 선물로 준비해 병원을 찾았다. 아이는 자고 있었지만 몸에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울면서 대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손을 맞잡은 대원들의 눈시울도 금세 붉어졌다.

29일 오후 5시경 홍천소방서에는 피자 5판과 치킨 7마리, 음료수 10병이 배달됐다. 서울에 사는 익명의 시민이 아이를 구한 소방관들의 헌신에 감동해 보내온 고마움의 표시였다. 홍천소방서 홈페이지에는 ‘여러분이 진정한 영웅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홍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홍천소방서 영웅들#헬멧 녹인 화마서 3세 남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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