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그루밍’ 상태 가능성” 전문가 의견에…1심 재판부 “인정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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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8월 20일 09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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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법 303호 형사대법정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재판이 진행 되는 모습. 법정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어 삽화로 현장을 재현했다. 사진=동아일보
서울서부지법 303호 형사대법정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재판이 진행 되는 모습. 법정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어 삽화로 현장을 재현했다. 사진=동아일보
수행비서에 대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판결한 재판부가 피해자 김지은 씨의 심리 상태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서울서부지법의 안 전 지사 무죄 판결문 전문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김 씨가 안 전 지사에 의해 성적으로 길드는, 이른바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 상태에 놓였을 수 있다고 지적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루밍’은 성범죄자가 피해자의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심리위원들은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능력을 넘어서는 보직을 준 점, 가벼운 신체 접촉부터 점차 강도 높은 성폭력으로 이행된 점, 보상을 제공한 점, 피해자를 특별히 대접한 점 등을 근거로 김 씨가 ‘그루밍’의 심리상태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안 전 지사는 성실성 등에 대한 호평과 추천에 따라 김 씨를 수행 비서로 발탁했고, 첫 간음행위 이전에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특별한 관심, 칭찬, 선물 등을 보내거나 대접을 한 정황도 없었다”고 했다.

또한 “그루밍은 주로 아동, 청소년 혹은 성적 주체성이 미숙한 대상이 그루밍의 대상이기 때문에 전문직으로 활동하는 성인 여성이 그것도 약 한 달 사이에 그루밍에 이를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법원이 언론 등에 공개한 보도자료에는 “피해자의 심리 상태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그루밍, 학습된 무기력, 해리 증상, 방어기제로서의 ‘부인과 억압’, 심리적으로 얼어붙음 등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적혀 있다.

또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실제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수행비서 김지은 씨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보면 업무상 대화가 대부분인 가운데 수행비서인 김 씨의 의견을 묻거나 배려와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공유하기 위한 감상을 전하기도 하는 등의 대화도 상당수 있어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기본적으로 고압적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김 씨에 대해서는 얼마나 저항을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재판부는 지난해 7월 30일 러시아 출장 당시 발생한 상황에 대해 “당시 김 씨가 음주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였거나 업무 때문에 심리적으로 심각히 위축된 상태는 아니었다”며 “나아가 당시 김 씨가 방을 나가거나 안 전 지사의 접근을 막는 손짓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안 전 지사가 위력적 분위기를 만들었거나 물리력을 행사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 전 지사가 ‘외로우니 나를 위로해 달라’, ‘나를 안아라’는 취지로 강요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행위가 정치적, 사회적 지위 내지 권력을 남용한 정도에 이른 것으로 단언하기 어렵다”며 “안 전 지사가 이를 위력의 행사로 인식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당시 김 씨가 한 최대한의 거절 의사 표현 행위는 고개를 떨구고 ‘아니요’라는 말을 중얼거린 것으로, 평소 지시를 즉각적으로 따르던 자신의 태도에 비쳐 볼 때 굉장히 두려워하고 거절하려는 모습이라는 것을 안 전 지사는 알았을 것이라고 김 씨는 증언하고 있다”며 “그러나 남녀가 단둘이 호텔 방에서 성적 접촉을 하기에 이르렀을 때의 태도를 평소 업무 태도와 비교해 안 전 지사가 김 씨의 거절 의사를 인식했을 것으로 추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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