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트럭 한대가 내뿜는 오염물질, LPG차 93대와 맞먹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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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공해化 시급한 소형 경유 화물차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A아파트 단지 안으로 택배를 실은 소형 경유트럭 한 대가 들어섰다. 트럭은 유치원 통학차량을 타기 위해 줄 서있는 10여 명의 아이들과 보호자 앞에 정차했다. 택배기사는 시동을 끄지 않은 채 짐을 내리고 날랐다. 경유트럭 뒤에 선 아이들은 배출가스를 고스란히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손녀의 등원을 돕던 주민 이모 씨(65)는 “택배 트럭이 하루에도 몇 대씩 아파트 단지에 들어와 저렇게 시동을 끄지 않고 짐을 내린다”며 “단지에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많은데, 시꺼먼 배출가스를 뿜어내는 트럭을 보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 1급 발암물질 내뿜는 경유차

경유차가 배출하는 미세먼지의 위해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경유차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장영기 수원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디젤엔진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가 대기오염에 미치는 비중은 15% 정도지만, 독성이 커서 발암 위해성 기여도는 84%에 이른다”고 말했다.

독성 발암물질을 뿜는 경유차는 우리나라 전체 차량의 42%를 차지한다. 승용차는 휘발유차, 전기차 등으로 많이 대체됐지만 화물차는 여전히 경유차가 93.3%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 화물차의 70.4%를 차지하는 소형 화물차(최대 적재량 1t 이하)는 특정 경유차종이 수년째 과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1t 트럭의 대명사로 불리는 현대자동차 포터만 해도 2010년 이래 매년 10만 대 이상 팔렸고 올 1, 2월 판매량이 1만3441대를 넘어섰다.

소형 화물차는 중·대형보다 한 대당 미세먼지 배출량이 적지만 수 자체가 많고 주로 주택가 주변을 운행해 위해성은 더 크다. 이형섭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은 “택배차 등 소형 화물차 대부분은 저속 주행하거나 정차 후 공회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 나오는 불완전연소 가스는 미세먼지를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경유차 오염물질의 93분의 1 LPG차

전문가들은 소형 화물차의 ‘저공해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한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LPG화물차다.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으로 사용이 제한된 LPG승용차와 달리 LPG화물차는 일반인도 구입할 수 있다. 다만 그동안 LPG 엔진 출력이 경유차에 비해 턱없이 낮아 외면받았지만 내년 경유차 수준으로 출력을 높인 LPG차 엔진의 개발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LPG차는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배출량이 거의 없고 질소산화물(NOx) 배출량도 적다. 2015년 국립환경과학원은 실내외 주행시험에서 휘발유차와 경유차, LPG차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비교했다. 실내 주행시험에서 휘발유차는 LPG차 배출량의 2.2배, 경유차는 7배의 질소산화물을 뿜었다. 실외 도로주행시험에서는 휘발유차와 경유차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LPG차보다 각각 3.3배, 93.3배 많았다. LPG차 93대가 내뿜는 질소산화물을 경유차 1대가 한 번에 배출하는 셈이다.

질소산화물은 다른 물질과 결합해 초미세먼지를 만드는 주요 물질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경유트럭을 LPG차로 전환하면 질소산화물 배출량의 80∼90%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LPG차보다 더 친환경적인 것은 전기차다. 다만 현재 출시된 0.5t 전기트럭은 국고 보조금 1100만 원과 지방비 보조금 500만 원 내외를 지원받더라도 2000만 원가량은 구매자가 부담해야 한다. 택배차량은 장거리 운행이 많아 충전에 대한 부담도 크다.

○ 선진국에선 LPG차 구입 시 인센티브

당장 현실적인 대안은 LPG차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등 더 친환경적인 차가 일반화되기에 앞서 LPG차가 친환경차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부는 2016년부터 친환경자동차기술개발사업단 연구과제로 ‘환경친화적 보급형 LPG 직접분사(LPDi) 1t 트럭 상용화 개발’을 진행해 왔다.

내년 4월 개발을 완료하는 친환경자동차기술개발사업단의 이영재 단장은 “경유차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세 가지 후(後)처리 장치를 붙여야 해 가격이 올라가지만 LPG차는 한 가지 후처리 장치만 붙이면 되고 연료가 싸 장기적으로 가격 부담이 작다”고 말했다.

일부 선진국에선 LPG 화물차의 친환경성을 인정하고 대중화를 위해 운행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곳도 있다.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서는 지역의 영세 사업자나 도심 운행 제한 지역에 있는 회사가 3.5t 이하의 LPG차량을 구매하면 2500유로(약 33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영국은 3.5t 이하의 차량까지만 운행할 수 있는 일반 운전면허 소지자가 LPG 등 친환경차를 사면 4.25t까지 운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경유트럭#미세먼지#lpg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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