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특구 연구기관들 참여… ‘짜고 치는 과학해설’ 매달 개최
‘오리엔트 특급살인’ 등 추리 펼쳐
정희선 원장(왼쪽)과 최종순 교수(오른쪽)가 각각 애거사 크리스티와 에르퀼 푸아로 분장을 한 채 과학수사 관점에서 해석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설명하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제가 1930년대 소설을 쓸 때는 지문감식 기법이 개발되지 않아 작품에 활용하지 못했어요.”
전설의 추리소설 작가인 애거사 크리스티 분장을 하고 나온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의 말에 객석이 웃음바다가 됐다. 18일 오후 6시 반 대전 롯데시네마 둔산관에서 열린 ‘짜고 치는 과학해설’은 과학수사 이야기로 내내 흥미진진했다. 과학을 다룬 영화를 과학자의 해설과 함께 감상하는 이 프로그램은 과학산업 분야 전문 온라인매체인 대덕넷과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연구기관들이 공동으로 5월부터 매달 1, 2회씩 개최했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이 해설을 맡은 이날의 영화는 최근 개봉된 크리스티 원작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가는 초호화 열차(오리엔트 특급)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 배경이다. 작품 속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13명의 용의자를 상대로 추리를 펼친다.
해설은 정 원장과 푸아로 분장을 하고 나온 같은 대학원의 최종순 교수(전 KBSI 부원장) 등 두 과학자가 맡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을 지낸 정 원장은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비롯해 미궁에 빠질 뻔했던 수많은 강력 사건에 과학적 해결책을 제시한 이 분야 전문가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과학수사의 관점에서 볼 때 영화 속의 최고 탐정 푸아로는 잘한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고 말했다. “푸아로가 사건 현장의 물건을 손수건으로 수거한 것은 잘한 일이에요. 조사자가 범인 지문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정 원장은 “그러나 푸아로가 문을 부수고 사건 현장에 홀로 들어간 것은 잘못이다. 증거물 훼손을 막고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 ‘네 개의 눈’(Four Eyes·두 사람을 말함)이 함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셜록 홈스와 푸아로 가운데 누가 더 훌륭한 탐정일까. 최 교수는 “푸아로는 지금으로 말하면 심리수사를 펼치는 프로파일러다. 사소한 진술도 놓치지 않는 기억력과 모순을 찾아내는 탁월한 분석력을 가졌다. 홈스는 발로 뛰는 증거추적형이다. 행색만으로도 직업과 성격 등을 파악하는 놀라운 관찰력과 추리력을 갖췄다”고 분석했다. 해설은 최근 과학수사로 옮겨갔다.
“푸아로의 활동 시기는 1930, 1940년대였어요. 그 이후 수사는 과학의 발전으로 놀랍게 성장했죠,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아마도 ‘유전자(DNA) 분석 기술’일 겁니다.”
정 원장은 “DNA 분석으로 세계 인구 중 1명보다 더 정밀한 100억분의 1의 확률로 생명체의 구분이 가능해졌다. 여기에다 혈흔 분석으로 사건 현장 재구성이 가능해졌고 폐쇄회로(CC)TV 발전으로 강력 사건 범인들이 현장을 벗어나기 무섭게 검거된다”고 소개했다.
과학수사는 무고한 죄수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정 원장은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을 과학적 증거로 구제하는 미국의 비영리기구 ‘이너슨스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는 1992년부터 최근까지 사형수 17명을 포함해 352명의 무죄를 입증했다. 꼬마 관객 여러분도 보람 있고 과학수사 분야에서 일하기를 기대한다”고 제안했다.
관객들은 또 과학퀴즈를 통해 국내에도 이미 조선시대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뜻의 ‘무원록(無寃錄)’이라는 과학수사 지침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날 과학해설을 관람한 KBSI 이광식 원장은 “과학은 이렇듯 우리의 삶 속에 있고 흥미롭다. 과학 대중화를 위한 기회를 앞으로 더 많이 만들겠다”고 말했다.
짜고 치는 과학해설은 21일 같은 장소에서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들의 해설 속에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감상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과학해설 영화 관람 문의 042-861-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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