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대통령 구두’… 시민의 발 돼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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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4년만에 다시 문 연 ‘청각장애인 수제구두’ 유석영 대표

유석영 대표가 사회적기업 벼룩시장에서 내년 1월부터 생산할 예정인 구두를 소개하고 있다. 김용석 기자 yong@donga.com
유석영 대표가 사회적기업 벼룩시장에서 내년 1월부터 생산할 예정인 구두를 소개하고 있다. 김용석 기자 yong@donga.com
‘대통령의 구두. 청각장애인이 만드는 수제 구두. 아지오.’

25일 사회적 기업 벼룩시장에서 만난 유석영 대표는 ‘대통령의 구두’라는 간이 입간판을 세우고 있었다. 유 대표는 14일 사회적 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을 세우고 아지오(이탈리아어로 ‘편하다’는 뜻) 구두 사업을 다시 시작한 뒤 이날 벼룩시장에서 첫 판매에 나섰다. 이날 행사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열렸다.

4년 만의 재도전이라 마음이 들뜰 법도 한데 유 대표는 여러 제안을 거절한 이야기부터 털어놓았다. “정말 많은 분이 10만 원, 50만 원씩 모아 주셔서 출자금 3억 원을 만들었습니다. 몇몇이 거액 출자를 제안했고 대기업들도 같이 사업하자고 했는데 다 거절했어요. 일반 시민들 출자만 받았고 나중에 이 돈은 꼭 갚으려고 합니다.”

거절한 이유는 “한 곳에 쏠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과거 폐업한 경험을 통해 좋은 일 하는 기업이라도 명분보다는 품질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배웠다. 유시민 작가, 가수 강원래 씨 등이 참여한 조합원 모집에서 정치인은 들이지 않았다. “구두를 사겠다는 분이 많아 선주문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100켤레 주문이 쌓였습니다. 한꺼번에 700켤레, 900켤레를 주문하겠다는 단체도 있었지요. 하지만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그는 올해 5월 ‘문재인 구두’로 전 국민의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이 추가로 구두를 구매하려 했는데 이미 4년 전 폐업한 상태였다는 스토리에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다.

“주변에선 돈을 대줄 테니 문 열라는 사람이 넘쳐났지만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미 다른 일도 하고 있었고, 또 의도와 다르게 일이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꿈도 가질 수 있지만 시장은 냉정합니다. 지난번에도 재투자 비용을 못 대 문을 닫았지요. 또 망하면 일하는 장애인분들께 상처를 줄 수도 있고요.”

유 대표는 유 작가와 상담해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유 작가는 그에게 “내가 영업이든 모델이든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 한 번 더 해보자”고 설득했다고 한다. 결심한 뒤론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다음 달 경기 성남 공장에 기계를 설치하고 청각장애인 직원을 뽑는다. 한 기업으로부터 기부받은 10개 구두 모델 디자인을 가지고 우선 1월부터 생산을 시작한다. 문 대통령이 구매했던 모델도 다시 만든다.

유 대표는 재설립 후 청와대 연락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 문을 다시 열면 대통령 구두를 만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생각이다. 이번엔 대통령 부인의 구두도 전달하고 싶어서 여성화 사업도 한다. 3월쯤 여성화가 나온다.

유 대표는 조합원 한 명이 프린터로 출력해 급조한 명함을 들고 있었다. 아직 아지오만의 구두 모델도 만들지 못한 상태다. 그의 각오는 단단하다. “인생 후반전을 다 털어 넣으려 합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장애인에게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주변 상황이 바뀌어도 우린 살아남아야 합니다.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얻었다 생각하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김용석 기자 yong@donga.com
#청각장애인 수제구두#유석영#대통령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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