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저출산 세대는 ‘성공 공식’이 다르다” 인구변화 감안해 자녀 진로 결정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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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꿔야 아이들이 행복합니다

INTERVIEW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INTERVIEW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금의 중3이 대학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대입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게 된다. 4년제 대학으로만 좁혀 봐도 경쟁률이 2021년 1 대 1, 2025년엔 0.96 대 1로 떨어진다. 서울 소재 대학의 경쟁률은 좀더 높겠지만 큰 흐름은 이대로 간다. 불과 몇 년 후의 미래가 이러한데 부모가 노후 대비를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대입 사교육으로 내몰 필요가 있을까.”

국내 베이비부머 1, 2세대인 1955∼74년생은 매년 100만 명 가까이 태어났다. 현재 중3인 2002년생은 그 절반인 49만 명 태어났다. 올해부터는 연 30만 명대 출산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45)가 두 딸(중3, 초6)의 교과목 과외를 끊은 것은 인구학자의 시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장녀에게는 베트남 진출을, 차녀에겐 농업고교 진학을 권하고 있다.

“누구나 무리 없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세대의 ‘성공 공식’은 이전 세대의 그것과 다르다. 시키는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저출산·탈산업 사회에선 스스로 찾아내고 응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진로를 결정할 때는 인구의 변화를 예측해 희소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조 교수의 큰딸은 미용에 관심이 많은데 훗날 이 분야로 진로를 잡는다면 국내엔 이미 관련 종사자가 많으니 ‘K-뷰티’가 뜨고 있는 인구 9400만, 중위연령 27세(한국은 44세)의 젊은 나라 베트남에서 기회를 찾았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둘째딸을 농고에 보내려는 건 농업의 전망을 밝게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농업 인구 비율이 5%쯤 되는데 평균연령이 60세가 넘으니 15년 뒤엔 농사지을 사람이 태부족하다. 젊고 전문적인 농부들이 그들을 대체하면 농업 인구는 더 줄어도 되고 농사지을 땅은 널려 있어 희소성이 높다. 더욱이 농업은 바이오, 기계, 유통 등 4차 산업혁명과도 두루 연결된다. 농사를 직접 짓지 않아도 된다. 농산물도 공산품처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가능하다. 가령 한국의 종자, 비료, 기술로 베트남 현지 농부들에게 생산을 맡기고 우리 농업인들이 품질관리를 하는 방법도 있다.”

희소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금 잘나가는 직업의 미래도
불투명해 보일 수 있겠다.

“예컨대 지금은 교사가 안정성이 높다고 인기지만, 저출산 탓에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20명 이하로 떨어진지 오래다. 학교 수도 줄고 있다. 그런데도 사범대학과 교육대학 정원은 거의 그대로이니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의사, 변호사도 안심 못한다. 이런 직종은 정년이 없는 노동 시장이라 빈 자리가 안 나면 새로운 세대가 진입하기 어렵다. 기성세대가 나이가 들어 정보력이 떨어진다 해도 인공지능의 힘을 빌릴 수도 있을 테니 이래저래 젊은층의 입지는 좁다. 경쟁에서 생존하려면 경쟁자의 수에 주목해야 한다.”

학생 수가 줄면 교사의 부담도 줄어 수업의 질이 크게 개선돼야 할 텐데 공교육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그간 사교육에 맡겨뒀던 교사 본연의 역할을 회복해야 할 때인데, 20명의 학생을 앞에 두고 아직도 40∼50명을 대하듯 가르친다. 토론식 수업도 활발하지 못하다. 20명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교사들이 새로운 교습법과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교육부가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현장 교사들이 자기계발에 쏟을 시간이 부족하다. 특히 행정업무 부담이 큰데 이게 주로 젊은 교사들에게 집중되면서 자기계발 의욕을 꺾고 있다.”

그는 “행정업무 전담교사, 담임교사, 수업담당 교사가 역할을 분담해 효율적으로 전문성을 키우게 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는 교원 인력 수급 문제를 풀어가는 방안이기도 하다는 것.

입시 경쟁률이 하락하고 신입생이 급감하면 대학들의 위기감도 클 듯하다. 공급이 넘친다고 무작정 대학을 없애고 교수들을 해고할 수도 없지 않나.


“대학의 구조조정과 커리큘럼 개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사회 변화를 반영한 진학제도부터 만들어야 한다. 만 18세 고졸자와 재수생만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인 대입제도에서 벗어나 자격만 갖추면 누구든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고교 졸업 후 바로 진학할 수도 있고, 그 시점에 앞으로 뭘 해야 할지 확신이 안 선다면 일단 취직해서 경험을 쌓은 뒤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게 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학생부 종합전형 대신 직업 경력 등을 살펴 선발하면 된다. 선(先)취업-후(後)진학 시스템이 정착하면 대학도 살리고, 인재도 제대로 키우고, 사교육비도 줄일 수 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대다수 복지국가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대학 내부에도 그런 공감대가 있나.


“자주 거론되는 주제다. 대학이 가만히 있어도학생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시대가 끝나가니 그럴 수밖에.요즘 교수들 사이엔 아이 때부터 사교육에 매몰된 어린 신입생들을 못 미더워하는경향도 있다. 이런 생들은 대학원에 진학해도하나하나 입에 떠넣어줘야 한다. ‘교수가 논문쓰는 법을 안 가르쳐줘 불만’이는대학원생도있다. 사회 경험을 좀 쌓고 들어오는 학생이라면 아무래도 배움에 대한 절실함 같은 게 좀 다르지 않겠나.”

대졸자도 취업이 어려운 마당에 고졸자가 직장을제대로 구할 수 있을까.

“기업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고졸자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라면 굳이 대졸자에게 맡길 필요가 없다. 채용한 고졸사원이 대학 진학을 위해 퇴사해도 그 정도의 비숙련 업무를 수행할 인력은 어렵지 않게 뽑을 수 있으니 기업 처지에선 손해 볼 게 없다.”


중·고등학교에서 진로교육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할 듯하다.


“교사, 특히 진로상담교사의 책임이 무겁다. 1년 뒤의 세상은 자신이 성장한 세상과 완전히딴판이란 걸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가족의 중심을 이루던 4인 가구가 사라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엔 함께 사는 가족 수가 2명대로 떨어졌다. 그 결과 4인 가구가 주 고객이던 패밀리 레스토랑이 사양세로 접어들었다. 대형마트는 지고 1, 2인 가구가 많이 찾는 편의점이 뜨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과 더불어이 같은 인구 구조의 변화를 잘 살피면서 진로 교육을 해야 한다.”

기업이 미래 전략을 짤 때도 인구 변화 추세를 세심하게 관측해야 할 것 같다.


“40∼44세 서울 시민의 최대 지출 항목이 뭘까.자녀 사교육에 찌들어 있을 무렵이니 대부분‘교육’이라고 생각할 텐데 조사 결과 1위는 ‘음식’이었다. ‘교육’은 ‘교통’ ‘주거’ ‘오락’보다도 후순위였다. 왜 그럴까. 그 연령대 서울 남자의26%, 여자의 18%가 미혼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고서 제대로 된 경영 전략을 세울 수 있겠나. 모 기저귀 업체는 지난해 국내 신생아 수가 2015년보다 3만 명 줄면서 매
출액이 8000억 원대에서 6000억 원대로 뚝 떨어졌다. 진작부터 생산시설 및 인력 축소에 들어가야 했는데 잘못된 통계 예측치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을 놓쳤다.”

조 교수가 사례로 든 현대자동차 얘기도 흥미롭다. 구매력 있는 인구가 줄면서 국내 자동차시장은 위축되고 있다. 기대했던 중국 시장도어렵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갈등은 차치하더라도 중국의 부자들은 유럽 차를 많이 타고, 일본차를 타던 이들은 계속 일본차를 타며, 현대차를 타던 이들은 중국차를 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는 비관적이지 않다고 한다. 미국 시장 덕분이다. 미국의 현대차 주요 고객인 히스패닉 인구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국내에서 인구학은 생소한 분야인데 전망은 어떻다고보나.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궁금해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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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각 분야에서 인구 지식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진출 분야가 늘고 있다. 그 동안 저출산에만 집중됐던 정부 인구정책도 범위를 넓혀가고있다. 중앙정부에 인구 관련 연구소가 설립될예정이고 지방자치단체들도 인구정책팀을 꾸리려고 한다. 보건 분야의 전망이 대체로 밝은 편인데 그중에서도 인구 부문이 괜찮다. 무엇보다요즘은 기업들이 인구학 전공자를 많이 찾고 있다. 공부도 해보면 재미있다. 인구학 교수? 그건 좀…하하.”


▼조영태 교수는…▼


인구 현상을 통해 사회의 특성과 변화를 파악하는 인구학자다.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후 미국 텍사스대에서 인구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타주립대 교수로 있다 2004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 임용됐다. 2015년부터 1년간 베트남 정부 인구·가족계획국에 근무하며 인구정책 자문에 응했다. 지난해 펴낸 저서 ‘정해진 미래’는 독특하고 다각적인 인구학적 관점에서 10∼20년 후의 한국을 예측하고 대비책을 제시해 인구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키웠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
#에듀플러스#저출산 세대#조영태#입시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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