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IT업체를 운영하는 이숙희 대표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저금통에는 성금 637만 원과 함께 10년간 각종 기념일에
맞춰 직접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위 사진) 한 50대 어민이 지난달 전남 장흥군 회진면사무소에 전달한 부표 저금통. 지폐와
동전 약 33만 원이 들어 있었다.(아래쪽 사진)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흥군 제공
지난해 12월 30일 전남 장흥군 회진면사무소. 작업복을 입은 50대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는 민원인 책상에 공 모양의 빨간 플라스틱 통을 놓았다. 그러고는 면사무소를 빠져나갔다. 플라스틱 통은 양식장에서 쓰는 부표(위치 확인을 위해 수면에 띄우는 것)였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칼로 부표를 가르자 안에는 지폐와 동전이 들어 있었다. 금액은 총 33만4570원. 면사무소 관계자는 “양식장에서 일하는 어민이 마땅히 돈을 모을 데가 없자 부표를 저금통으로 쓴 것 같다”고 말했다.
○ 올겨울에도 ‘십시일반’ 빛났다
지난해 12월 19일 한 50대 남성이 전남 함평군청을 찾았다. 이 남성은 함평군 주민복지실장에게 “어려운 노인들께 내복이라도 사 드리라”며 검정 비닐봉지를 건넸다. 비닐봉지에는 40만5000원이 들어 있었다. 이 남성은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사라졌다.
해남군 땅끝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어린이 32명은 20일 성금 81만 원을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돼지와 개구리 모양부터 ‘스팸’과 아이스크림 용기로 만든 저금통 10여 개가 한자리에 모였다. 7, 8km를 걸으며 버스요금을 아껴 돈을 낸 어린이도 있었다. 땅끝지역아동센터는 2006년 건물 매각이 결정돼 없어질 뻔했지만 영화배우 문근영 씨의 기부 덕분에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그 후 센터 어린이들은 9년째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광주의 정보기술(IT)업체인 ㈜그린정보시스템의 이숙희 대표(56·여)는 지난해 12월 28일 커다란 돼지저금통을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건넸다. 저금통에는 637만370원이 들어있었다. 이 대표가 10년간 자녀의 입학식, 손주 돌잔치 등 특별한 기념일에 맞춰 쓴 편지들도 함께 있었다.
대구의 ‘키다리 아저씨’는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23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에게 수표 1억2000여만 원을 건넸다. 그는 2012년부터 5년간 6차례에 걸쳐 7억2000여만 원을 기부했다. 2012년부터 매년 익명으로 기부한 울산의 ‘키다리 부부’는 49세 동갑내기 소방관으로 밝혀져 화제다. 이들은 어려운 이웃을 도와 달라며 이번 겨울에도 200만 원을 전달했다.
충북 제천시 청풍초등학교 3학년 강나연 양(9)은 자신이 받은 장학금을 선뜻 기부했다. 제천시 인재육성재단의 ‘꿈나무 장학생’에 선정돼 받은 30만 원이다. 강 양은 지난해 12월 6일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보낸 편지에 “뉴스에서 ‘기부 한파’라는 내용의 기사를 봤다. 사람들이 기부할 여유가 없어서 한파가 온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 최순실도 꺾지 못한 온정
사실 올겨울은 심각한 불황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겹쳐 전망이 어두웠다. 실제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캠페인 초반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11월 21일 3588억 원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한 달 뒤인 12월 20일 모금액은 844억 원으로 수은주는 23.5도에 불과했다.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기업들이 나서고 개인 기부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수은주는 1년 전보다 더 빨리 올랐다. 24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캠페인 64일째인 23일 기준으로 전국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99.7도. 공동모금회는 65일째인 24일 모금액을 감안하면 목표액 달성이 유력해 25일 ‘100도 돌파’ 발표를 준비 중이다. 전년도 캠페인 70일째에 비해 5일 빠르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목표 달성 기간이 예년에 비해 짧을 뿐만 아니라 모금 총액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지방의 온정은 따뜻함을 넘어 뜨거울 정도다. 전남은 사랑의 온도탑이 이미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광역자치단체 11곳에서는 모금액 기준으로 역대 최고액을 이미 넘어섰다. 조선업 불황으로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울산도 1년 전보다 4일 빠른 23일 100도를 넘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