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에 살거나, 근무하는 직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또 저소득층일수록 비만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내 비만 통계와 세계 각국의 비만 정책·연구를 종합한 ‘2016 비만백서’를 12일 처음으로 공개했다. 비만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연간 6조7695억 원으로 음주, 흡연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했다. 특히 비만 관련 질환 치료에 건강보험 재정 5.8%가 소요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 비만도 가난처럼 대물림
2015년 건강검진을 받은 성인 1346만 명 중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지수(BMI)가 25 이상인 비만·고도비만·초고도비만 수검자의 비율은 32.5%로 2006년의 29%보다 증가했다. 특히 같은 기간 남성의 비만율은 34.1%에서 40.1%로 높아져 10년간 21.4∼23% 수준을 유지해 온 여성보다 증가폭이 컸다.
소득, 지역 등 계층 간의 비만율 격차도 눈에 띄었다. 소득과 재산을 반영한 건강보험료 분위와 비만율을 대조해 보면,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1분위는 모든 계층을 통틀어 고도비만율(BMI 30∼35)이 4.8%로 가장 높았던 반면 고소득층인 17∼19분위는 2.3%였다. 초고도비만율(BMI 35 이상)도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직장 가입자의 경우 직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비만율이 높았고, 지역별로는 제주(36.1%) 강원(35.4%) 충남(34.6%) 등 농어촌 지역의 비만율이 대구(30.2%) 광주(31.0%) 서울(31.8%) 등 도시 지역보다 높았다.
이는 7세 미만 영유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생후 24개월 미만일 땐 신장별 체중이 상위 95% 이상일 경우 ‘과체중’으로, 24개월 이상은 BMI 정규 분포를 기준으로 ‘비만’을 구분하는데, 부모의 건보료가 20분위인 경우 비만율이 2.5%에 불과하지만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점차 늘어 1분위는 3.7%다. 영국에서 이뤄진 장기간 추적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BMI가 높을수록 자녀도 비만인 경우가 많았다.
○ 선진국은 ‘비만세’ vs 한국은 중구난방 대책
세계 곳곳에선 비만에 악영향을 미치는 설탕 등 당류나 탄산음료에 물리는 ‘비만세’를 도입하고 있다. 고열량 식품의 소비를 줄이고 거둔 세금은 비만 퇴치 정책에 활용한다는 취지다. 성인 60% 이상이 비만인 멕시코는 2013년부터 설탕이 함유된 음료 1L에 1페소(약 54원)를 세금으로 물리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시도 올해부터 탄산음료 한 캔(약 283g)에 15센트(약 177원)의 ‘소다세’를 매긴다. 지방세를 도입한 국가에서 비만세가 적용된 제품의 소비는 0.9∼11.2% 줄었다.
이런 ‘극약처방’으로 비만과의 전쟁에 나선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 비만 정책은 컨트롤타워 없이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까지 ‘제4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따라 비만을 억제하겠다고 나섰지만 비만율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목표다. 게다가 농림축산식품부의 ‘식생활교육 기본계획’, 교육부의 ‘학생건강증진 기본방향’ 등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각 부처의 비만 관련 정책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제각각 진행되고 있다.
문창진 건보공단 비만대책위원장(차의과대 일반대학원장)은 “한국의 비만 대책은 사실상 답보 상태”라며 “백서를 지속적으로 발간해 비만 대책 수립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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