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들강 여고생 살인범’ 16년만에 무기형 단죄… 피해자 어머니 눈물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법 첫 적용… 피지도 못하고 꺾인 17세 恨 풀어
11일 오전 11시 광주 북구 영락공원. 환갑을 맞은 엄마는 딸의 묘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잠시 뒤 엄마는 근처 봉안당을 찾았다. 딸의 억울한 죽음에 괴로워하다 8년 전 극단적 선택을 한 남편이 있는 곳이다. “딸을 죽인 범인이 유죄를 받았으니 이제 한이 풀렸어요. 늦게나마 범인을 처벌하게 해준 태완이법에 감사해요.”
○ 16년 만에 확인된 ‘드들강 살인사건’의 진범
차가운 겨울 강변에서 성폭행범에게 목이 졸려 살해당한 소녀와 하루아침에 딸을 잃은 어머니의 한(恨)이 16년 만에 풀렸다.
광주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김영훈)는 이날 오전 10시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강간 살인 등)로 기소된 김모 씨(40)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피고인석의 김 씨는 고개를 숙였다. 미제 강력사건 중 ‘태완이법’ 적용으로 해결된 사건에 처음 내려진 판결이다.
드들강 살인사건은 2001년 2월 전남 나주시 드들강에서 박모 양(당시 고3·17세)이 알몸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말한다. 수사망이 좁혀 오자 김 씨는 박 양을 성폭행한 흔적이 남은 승용차를 팔았다. 그리고 범행 2개월 후 개 12마리를 훔쳐 구속됐다. 경찰은 김 씨가 고의로 절도를 저지른 뒤 교도소에 들어가 수사망을 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2년이 지난 2003년 김 씨는 전당포 주인 이모 씨(당시 63세) 등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암매장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10년간 수감 생활을 하던 중 초등생을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으로 일명 ‘DNA법’(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뒤늦게 유전자가 확보됐다. 분석 결과 김 씨의 유전자는 드들강 살인사건 용의자의 것과 같았다.
당시 경찰은 김 씨를 상대로 수사를 벌여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하지만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증거불충분으로 2년 만에 무혐의 처분했다. 김 씨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고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완강히 부인했기 때문이다. ○ 과학수사와 태완이법이 밝힌 진실
경찰은 태완이법 시행을 앞두고 2015년 3월 본격적인 재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김 씨는 교도소에서 가석방을 받기 위해 모범수로 생활 중이었다. 김 씨의 가족들은 경찰에 “착실하게 생활 중인데 왜 엉뚱한 죄를 뒤집어씌우느냐”고 항의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박 양의 부검 사진 100여 장을 받아 정밀 분석했다. 당시 김상수 나주경찰서 수사과장(59·현 해남경찰서 수사과장)은 “박 양이 숨질 당시 생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내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김 씨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검찰은 김 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김 씨는 “박 양과 합의해 성관계를 가졌고 이후 여자친구를 불러 외할머니 집에 갔다”고 주장하는 등 시종일관 범행을 부인했다. 김 씨의 유죄가 인정된 건 수사 단계에서 확인된 생리혈이 결정적이었다.
김 씨 재판에 출석한 법의학자 이정빈 단국대 석좌교수(71)는 “생리혈과 체액이 섞이지 않았다는 것은 박 양이 성폭행을 당한 직후 (움직임이 없는 상태에서) 살해된 증거”라고 증언했다. “합의 아래 성관계를 가졌다”는 김 씨 주장은 신빙성이 낮으며 결국 박 양은 성폭행 직후 살해됐다는 과학적 결론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김 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김 씨는 범행 직후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사진 7장을 찍고 재판 신문사항 답변을 미리 연습하거나 교도소 접견실 녹음을 의식해 무죄를 주장하는 등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태완이법
2015년 7월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 이로써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모든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1999년 5월 대구에서 황산테러로 숨진 김태완 군(당시 6세)의 이름을 땄다. 미제 살인사건 273건의 재수사가 시작됐고 지난해 드들강 살인사건 등 3건이 해결됐다. 그러나 소급 적용이 안 돼 태완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