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않고 죽치는 ‘뻔뻔족’에 속만 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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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주인들 얌체고객에 골머리

 
지난해 12월 25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 주인 박모 씨(27)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카페 손님 A 씨(26) 탓이다. A 씨는 사흘 내내 같은 시간에 카페를 찾았다. 하지만 박 씨에게 A 씨는 단골이 아닌 ‘진상’ 손님이다. 그는 올 때마다 단 한 잔의 음료도 주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3시간 넘게 테이블에 앉았다가 자리를 떴다.

 성탄절인 이날도 마찬가지. A 씨는 홀로 2인 테이블을 독차지하고 줄곧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역시 커피나 주스는 시키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카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자리가 없어 기다리는 손님까지 있었다. 참다못한 박 씨가 “손님, 음료를 시키셔야 합니다”라고 A 씨에게 말했다. 그러자 A 씨는 갑자기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고 말하며 5000원짜리 지폐를 박 씨 입에 쑤셔 넣었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박 씨는 A 씨를 모욕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 ‘카공족’ ‘카추족’에 알바생 마음앓이

 요즘 카페나 패스트푸드 전문점은 이른바 ‘카공족’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카공족은 카페에서 음료 한 잔만 주문하고 여러 시간 동안 공부하는 손님을 말한다. 겨울이 되면서 날씨가 추워지자 ‘카추족’도 늘고 있다. 카페에서 음료는 주문하지 않고 추위만 피하는 손님 아닌 손님들이다. 주인들은 이런 손님을 그냥 두면 눈앞에서 다른 손님을 놓치고 내쫓자니 봉변을 당한다며 울상이다.

 요즘 종로구 종로3가 근처 카페는 이런 얌체 손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곳에는 노인들이 많이 찾는 탑골공원이 있고 다양한 어학원이 자리하고 있다. 종로구 P카페 직원 박재희 씨(22·여)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신문 보고 휴대전화만 만지는 손님들이 한 시간에 한두 명씩 꼭 있다”며 “추운 날씨를 피하러 온 노인들부터 학원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까지 다양하다”고 전했다.

 이런 손님들은 대부분 직원이 주문을 요구하면 미안해하기는커녕 발끈한다. ‘지금 막 주문하려고 했다’ ‘이미 주문했는데 다 마시고 컵을 버린 것이다’ 등 이유도 비슷하다. 종로구 H카페 아르바이트생 김경서 씨(22)는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 주문을 부탁하면 버럭 화를 낼 때가 많다. 욕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탄했다.

 심하면 난동을 부리는 손님도 있다. 직원 박 씨는 “지난주 한 50대 남성이 붐비는 시간대에 와서 30분 넘게 그냥 앉아 있어서 주문을 부탁했더니 ‘너는 아비도 없냐’고 호통치며 전시된 머그컵을 집어 던져 바닥에 깨뜨렸다”며 “결국 경찰까지 불렀다”고 말했다. 김 씨도 “얼마 전 40대 남성이 사과를 들고 오더니 주문도 않고 대뜸 ‘과도가 있냐’고 물었다”며 “과도가 따로 없다고 하니 사과를 내게 집어 던져 경찰을 불렀다”고 말했다.
○ 진상도 각양각색

 얌체 손님의 유형도 다양하다. 손님 10명이 와서 음료 두 잔만 시키고 종이컵을 8개 받아 가기도 하고 다른 카페에서 산 커피를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다. 건대입구 지역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장현진 씨(41)는 “한 손님은 다른 카페에서 산 커피를 들고 와 시럽을 넣어 달라고 하길래 거절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 최모 씨(26·여)는 “음료 대신 뜨거운 물만 달라고 해서 줬더니 가져온 컵라면에 부었다”며 혀를 찼다.

 유흥가 주변이나 24시간 카페에는 밤새 술을 마시고 첫 차를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광진구 T카페 점원 유모 씨(29·여)는 “새벽에는 매장 내 손님의 대부분이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있다”며 “주문자만 이용할 수 있도록 화장실에 비밀번호를 걸어놨지만 ‘화장실 좀 쓰겠다는데 왜 돈을 달라 그러느냐’며 화를 내는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대학원생 옥모 씨(33·여)는 “카페는 원래 오랜 시간 여유롭게 앉아서 얘기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 아니냐”며 “커피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주문을 했으면 오래 있어도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부 황모 씨(54)도 “너무 춥거나 무릎이 아플 땐 가끔 카페에 앉아 있다 갈 때가 있다”며 “손님이 많아 바쁠 때 빼고는 카페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인들은 피해가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장 씨는 “하루 평균 손님 15명이 4000∼5000원짜리 커피 한 잔조차 주문하지 않는다”며 “한 달에 200만 원가량 손해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커피#카페#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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