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해보는 연탄 나르기지만…” 쪽방촌에 늘어선 희망의 동앗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9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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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매섭게 부는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쪽방촌. 비탈까지 빼곡히 늘어선 집들과 그 사이 좁은 골목은 영하 4도의 날씨에 곳곳이 얼어 있었다. 29일 오후 인적 드문 동네는 여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새내기 대학생들은 연탄 나르기에 열중한 나머지 이마에 맺힌 땀이 살얼음으로 변한 것도 몰랐다.

이날 숙명여대 신입생 77명과 교수·교직원 20명은 8가구에 전달할 연탄과 쌀,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쪽방촌을 찾았다. 여성지도자 육성 과정인 '아너스 프로그램'의 수료를 앞둔 학생들이었다. 3년 전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한 '연탄 나눔'은 주민들과 학생, 학교의 긍정적인 반응 속에 어느덧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모자와 목도리, 핫팩, 비옷으로 중무장한 학생들은 나눔에 한창이었다. 혹여 얼굴에 검댕이 묻을까 걱정하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골목골목 길게 늘어서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전했다. 최신 가요를 흥얼거리며 바쁘게 움직인 덕에 준비된 연탄 2400장을 3시간여 만에 모두 나를 수 있었다. 이 학교 문화관광학과 이지원 씨(19·여)는 "구멍이 뽕뽕 뚫려 있어서 가벼운 줄 알았는데 연탄 한 장이 3.6kg이나 되는지 처음 알았다"며 "처음 해보는 연탄 나르기라 힘들었지만 뿌듯하다"고 말했다.

각 집집에 전달된 물품은 연탄 300장, 쌀 10kg, 두루마리 휴지 30통이 전부였다. 홀몸 가정 기준으로 한 달도 채 나기 어려운 양이지만 이를 받아든 가정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여 마련한 것이라 의미는 남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77명의 학생들은 지난달 29일부터 3일간 조를 나눠 생리대파우치, 액세서리, 집회용 LED 촛불을 추위 속에서 팔았다. 빈 강의시간이나 방과 후 틈틈이 모금한 덕분에 200여만 원이 모였다. 얼어붙은 소비심리 속에서도 학생들의 나눔 열정을 모른 척하지 않은 시민들 덕분에 3년 전보다 80만 원이나 많은 돈이 모였다. 경제학과 김수현 씨(20·여)는 "우리 조는 호떡을 직접 만들어 팔았는데 많은 분들이 '학생들이 힘들게 돈 벌어 좋은 일에 쓰려는 게 기특하다'며 호떡을 사주셨다"고 말했다.

집 안 가득 연탄을 채워 넣은 학생들은 포스트잇에 손 편지까지 적어 어르신들에게 건넸다. '추운 겨울 연탄으로 따뜻한 겨울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따뜻한 연탄으로 2017년 새해 잘 맞이하세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등 희망적인 메시지였다.

쪽지를 받은 주민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학생들의 손길을 마주한 전순달 씨(81)는 "학생들이 직접 모은 돈으로 도와주는 게 얼마나 고맙냐"며 "길도 얼고 눈도 왔는데 여학생들이 고생이 많다"며 울먹였다.

쪽방촌에서의 나눔은 학생들에겐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여한 경영학과 김미진 씨(21·여)는 "겨울이 되면 늘 생각날 것 같다. 어르신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쪽방촌에 따뜻한 겨울을 선물한 학생들이 늘어서서 만든 인간 띠는 희망의 동앗줄 같았다.

김동혁기자 h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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