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신동 유태평양은 현재 국립창극단의 가장 ‘핫’한 배우이자 스타 재목으로 성장했다. 젊은 소리꾼 유태평양은 국악만큼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 평소 팔찌 등 화려한 장신구와 튀는 색 옷을 좋아한다. 그는 “예술가가 무난한 건 별로다”라고 말했다. 유태평양 제공
#1. 1998년 10월 전북 전주시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국악 신동’이 탄생했다. 만 여섯 살짜리 꼬마가 3시간 동안 판소리 ‘흥부가’를 완창했다. 한글도 채 못 떼고 앞니가 빠져 발음이 새던 어린애가 흥부가를 통째로 외워 풀어낸 것이다. 모두가 ‘하늘에서 내린 꼬마 명창’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판소리 최연소 완창 기록이다.
#2. 2016년 4월 서울 중구 국립극장. 국립창극단원이 된 24세 청년이 흥부가를 완창했다. 30여 년 동안 ‘완창 판소리’ 공연을 기획해온 국립창극단이 역대 가장 어린 소리꾼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다. 지금까지 박동진 오정숙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서 온 무대다. 한동안 그의 존재를 잊고 있던 관객들에게 ‘저 이렇게 잘 자랐어요’라고 알린 공연이었고, 국악계에는 국립창극단에 들어온 뒤 화려한 입단 신고식을 치른 셈이었다.
두 무대의 주인공은 유태평양 씨(24)다. 어른도 어렵다는 판소리 완창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여섯 살 소년은 어느덧 20대 중반의 청년 소리꾼으로 성장했다. 그는 지금 국립창극단의 가장 ‘핫’한 배우이자 앞으로 국악계를 이끌 스타 재목으로 꼽힌다.
○ 청년이 된 국악 신동
유 씨는 한 번도 국악을 떠난 적이 없었다. 광주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로 옮겼다. 2010년 국립전통예술고 시절에는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부문 학생부문 장원을 차지했고, 2년 뒤인 2012년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일반부에서 1등을 했다. 올해 초 전북대 한국음악과를 졸업하고 단번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타고난 끼와 재능에 노력도 곁들여졌지만 좋은 스승을 많이 만난 것도 소리꾼 유태평양에게는 큰 복이었다. 아버지의 스승이기도 한 인간문화재 조통달 명창은 그에게 평생 스승이자 할아버지 같은 존재다.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학할 때 조 명창은 소리를 까먹지 말라며 국제전화로 레슨을 해 주기도 했다. 유 씨는 조 명창에게서 한과 슬픔이 극대화된 미산제 흥부가와 수궁가를, 성창순 명창에게는 맺고 끊는 절제미가 돋보이는 강산제 심청가를 배웠다. 그가 어린 나이에도 다양한 소리를 구사하는 소리꾼으로 평가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자마자 극단 쪽에서 완창 제안을 해왔다.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흥부가를 택한 건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기도 했지만 ‘꼬마 유태평양’의 흥부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청년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연을 다시 보면 아쉬운 게 많죠. 틀리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하기도 했고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가 하는 소리라 한계가 있었죠.”
9월에는 국립극장 시즌 개막작인 ‘오르페오전’에서 주역으로 데뷔했다.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오페라 형식과 접목한 창극이다. 아이돌 스타 김준수와 더블 캐스팅이었다. 10월 공연된 ‘트로이의 여인들’에서는 극 처음과 끝에 등장해 극의 주제를 전하는 고혼(孤魂) 역을 안숙선 명창과 나눠 맡는 등 입단 첫해 막내 단원으로는 파격적인 경력을 쌓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 시작은 마당놀이로 장식한다. 유태평양은 내년 1월 29일까지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에서 ‘흥보’를 연기한다.
○ 국악 세계화 선두주자
완창은 판소리 한 대목이 아니라 한 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구연(연기)하는 것이다. 창(노래)과 아니리(사설), 발림(동작)을 섞는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서양의 오페라와는 달리 소리꾼은 작품의 모든 배역을 혼자서 소화하고 때로는 해설자 노릇도 한다. 흥부에서 놀부로 변신하기도 하고 공연 중간에 객석과 대화를 나누고, 재담도 곁들인다. 길게는 8, 9시간 동안 무대에서 혼자 공연을 이어가야 하는 판소리 완창은 세계 어느 공연보다 체력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어렵고 힘든 퍼포먼스다.
그는 청년의 패기로 여전히 판소리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어린 시절 ‘국악 신동’ 스토리로 판소리를 모르던 사람들에게 국악을 알렸다면 지금은 더 많은 또래 젊은이들이 자신처럼 국악을 즐기게끔 하는 게 꿈이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춘향가와 적벽가까지 판소리 다섯 마당을 모두 완창할 계획이다.
그는 국악 외에 음악과 패션 등 다른 장르에도 관심이 많다. 그의 복장과 액세서리도 평범하지 않다. “국악인 하면 떠오르는 얌전하고 무난한 스타일이 싫어요. 예술인은 좀 튀어야죠.”
연극, 뮤지컬, 오페라와 국악의 협업을 통해 음악의 새 길을 모색하는 데도 관심이 많다.
“여러 장르의 음악을 해봤지만 결국 국악으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국악이 비주류라고 하지만 마니아층이 두껍고 오래된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봐요. 전통 소리를 제 또래들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들려 드리는 게 젊은 소리꾼으로서 제가 할 일이라고 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