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정재락]‘안전제일 으뜸울산’이 공감 얻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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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한때 울산공단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 명절 귀성 수단은 회사 통근버스였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는 수십 대의 통근버스가 전국 각지로 출발하기 위해 본관 앞에 장사진을 쳤다. 선물 꾸러미를 양손에 든 근로자 부부가 색동옷 입은 아이들을 데리고 간부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는 장면은 명절 단골 풍경이었다.

 요즘은 통근버스가 거의 사라졌다. 자가용 급증 탓도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경영 합리화를 내세워 통근버스를 없앴다. 관광버스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울산의 관광회사들이 운영 중인 관광버스는 주말과 휴일에는 관광객을 태우지만 평일에는 통근버스로 활용된다. 울산의 26개 관광회사에 소속된 관광버스 940대 대부분이 관광과 통근버스를 겸한다고 울산시는 밝혔다. 기사들은 휴일 밤늦게 관광지에서 울산으로 돌아와 세차장에 차를 맡기고 쪽잠을 잔 뒤 새벽에 나가 근로자를 출근시켜야 하기에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지난달 13일 경부고속도로 언양 갈림목에서 10명이 사망하는 사고를 낸 태화관광 소속 기사 이모 씨(48·구속 중)도 마찬가지였다. 이 씨는 사고 당일 오전 서너 시간 동안 관광버스로 근로자들을 출근시킨 뒤 대구공항으로 가 중국 관광객을 태우고 울산으로 돌아오다 사고를 냈다. 관광객이 두 시간 늦게 입국한 데다 다음 날 새벽 근로자를 통근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과속(제한속도 시속 80km인 곳을 108km로 주행)과 무리한 끼어들기를 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번과 같은 대형 참사의 1차 책임은 운전사에게 있다. 하지만 과로에 시달리는 버스 기사들을 관리하는 관광회사 측의 과오는 없는지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는 ‘속 빈 강정’이었다. 관광회사를 두둔한다는 인상마저 풍겼다. 서장을 본부장으로 수사본부를 구성한 울주경찰서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수사 결과를 통해 태화관광 대표 이모 씨(65)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운전면허가 정지된 권모 씨(56)를 기사로 고용했다는 것. 이번 사고와는 무관한 것으로 입건했다. 경찰은 그러면서 이 회사가 보유 중인 관광버스 68대 가운데 8대는 시속 110km가 최고인 속도제한장치를 조작한 사실을 적발했지만 이를 빼고 발표했다. 관광버스 4대도 편법으로 증차한 사실도 드러났다. 태화관광 소속 버스 기사 박모 씨(54)는 면허정지 수준인 혈중 알코올 농도 0.09%의 상태로 지난달 29일 오전 7시경 울산 공업탑 로터리에서 버스를 운전하다 음주단속에 걸렸다. 참사 발생 17일 만에 기사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면 태화관광의 기사 안전교육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특별 점검에 나서는 기관은 하나도 없었다.

 태화관광에 대해 경찰은 원점에서 재수사해야 한다. 울산시도 ‘4대 감차’ 행정처분만으로 끝내서는 안 되고 다른 위법 사실이 있는지 특별 점검을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부당노동행위 여부에 대해 근로 감독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안전제일 으뜸울산’이라는 울산시의 비전에 시민들이 공감하지 않겠는가.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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