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료인에 ‘병원시장 개방’ 악용… 유령 생협 만들어 허위진단서 장사
건보료 챙기는 등 보험사기 온상으로
고령층이 주로 사는 지방의 ○○의원 앞. 매일 수상한 승합차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실어 나른다. 의사는 자주 바뀌지만 언제나 환자들로 북적인다. 이 병원의 명의는 이 지역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 진료비는 무료에 가깝지만 하지도 않은 물리치료를 한 것으로, 소독도 한 번만 하고 여러 번 한 것으로 기록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급여를 부정하게 타 낸다.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를 떼먹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경찰과 검찰이 파악한 현장을 재구성한 모습이다. 지역 주민이 주인이 돼 지역 의료복지 서비스를 위해 활동하는 의료생협이 새로운 형태의 ‘사무장 병원’을 양산하는 통로로 변질되고 있다. 사무장 병원이란 사무장이 변호사를 고용해 영업하는 법률사무소처럼 일반인이 고용 의사를 앞세워 세운 불법 병원을 일컫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신자용)는 경기 안산시 A의료생협의 서모 이사장(57)을 의료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라고 5일 밝혔다. 서 씨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비의료인인 사무장들에게서 돈을 받고 의료생협 명의를 빌려 준 뒤 병원 2곳을 개설했다. 그는 의료생협 부설 한의원 2곳도 개설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급여와 의료급여 7억여 원을 부정 수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민간 보험회사로부터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1000여만 원도 부당하게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생협은 조합원과 지역 주민, 취약 계층에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이다. 의사면허가 없어도 조합원 300명, 출자금 3000만 원 이상 등의 요건을 갖추면 지방자치단체장의 승인을 얻어 설립할 수 있다. 협동조합 명의로 병원을 세우는 것도 가능한데, 2010년 9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생협법) 개정안에 ‘100분의 50의 범위에서 비조합원에 대해서도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의료생협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09년 108개에 그쳤던 의료생협은 지난해 577곳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유령 의료생협을 설립하고 사무장 병원을 차린 뒤 환자를 모집하고 허위 진단서를 발행해 건강보험료와 보험금을 편취하는 사건이 계속되자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의료생협 설립 인가 요건을 조합원 300명에서 500명으로 늘리고 출자금은 1억 원 이상으로 높여 설립을 비교적 까다롭게 하는 생협법 개정안이 이달 말부터 시행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