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농업진흥지역 해제 놓고 석달째 시끄러운 봉하마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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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인근 친환경농사 망친다”… 노무현 前대통령 측근들 반대
지가상승 기대한 농민-지주들 발끈… “봉하마을 떠나라” 잇따라 집회

영농법인 ㈜봉하마을이 회사 입구에 내건 현수막. 이 건물을 지나면 생태환경농업을 하는 봉하 들판이 나온다.
영농법인 ㈜봉하마을이 회사 입구에 내건 현수막. 이 건물을 지나면 생태환경농업을 하는 봉하 들판이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이 석 달째 시끄럽다. 농업진흥지역 해제를 둘러싼 갈등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 측근과 봉하마을의 노대통령 지지자 일부가 등을 돌린 채 손가락질을 하는 시태로 번졌다.

1일 봉하마을 중앙 다목적 광장. 최근까지 진흥지역 해제 찬성과 반대 측이 내걸었던 현수막 수십 개는 모두 사라졌다. 대신 ‘더불어민주당은 봉하마을에 그만 오소’라는 농장 지주 명의의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다른 한쪽엔 ‘생태계 복원을 바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지키겠다’는 영농법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농업진흥지역 해제를 통한 ‘농민의 재산권 행사’를 주장하는 지주와 ‘생태 환경 보존, 노무현 정신 계승’을 외치는 영농법인이 충돌하는 현장이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 주민들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방문을 앞두고 회관 앞 도로에 내건 현수막. 봉하영농법인 등에 대한 반감을 나타낸 것이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경남 김해 봉하마을 주민들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방문을 앞두고 회관 앞 도로에 내건 현수막. 봉하영농법인 등에 대한 반감을 나타낸 것이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경위는 이렇다. 농림축산식품부는 6월 30일 전국 농업진흥지역 8만5000ha를 해제·변경했다. 농지 이용 가능성이 낮거나 도시화가 진행된 곳을 풀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였다. ‘농지법’에 따라 지정된 농업진흥지역은 농업 생산 외의 행위가 엄격히 제한돼 지주들 불만이 컸다.

문제는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일원 95.6ha가 해제 지역에 포함되면서 불거졌다. 이 가운데 43.3ha에서 농업회사법인 ㈜봉하마을(대표이사 김정호 전 대통령비서관)이 지주들과 함께 친환경 농사를 지어 왔다. 이른바 ‘봉하 오리쌀’이 생산되는 농지다. ㈜봉하마을은 즉각 진흥지역 해제를 반대하고 나섰다. 노 전 대통령 묘역 인근인 봉하 들판은 친환경 농업 기반을 조성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갔을 뿐 아니라 공익적 가치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또 현장 조사와 여론 수렴도 미흡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봉하 들판만 진흥지역 해제가 유보된 상태다.

지가 상승 등을 기대하고 있는 농민과 지주들은 발끈했다. 197명의 지주 대부분은 최근 잇따라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진흥지역 해제를 촉구했다. 봉하 들판은 경지 정리가 되지 않은 데다 농업용수 공급 시설도 미흡해 불편이 많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인 이재우 전 진영조합장(70) 등은 “농지를 갖고 있지 않은 ㈜봉하마을은 진흥지역 해제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비난했다. ‘김 대표는 마을을 떠나라’며 원색적인 공격을 퍼붓던 농민들은 지난달 14일 농로 주변에 제초제를 살포하고 ‘친환경 농법 포기’를 선언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봉하마을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등 26개 단체는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봉하마을 농지 농업진흥지역 해제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10년간 지역 주민과 행정의 노력 끝에 황새, 수달, 매, 큰기러기 등이 도래하는 청정 지역이 된 봉하 들판은 보존가치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친환경 농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농식품부와 경남도가 엄정한 재심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남도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도시지역 가운데 경지 정리가 되지 않은 곳은 모두 진흥지역 해제 대상이기 때문이다. 6월 농정심의위원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해제를 의결했고 이후 환경이나 여건 변화가 없는 만큼 재심의는 안 하겠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곧 봉하 들판에 내려와 현지 사정을 살핀 뒤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어떤 방향이든 봉하 들판은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고 달리던 한가로운 모습으로 돌아가긴 어렵게 됐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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