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년간 40명… 신장병 환자들의 ‘수호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촌세브란스의 50대 후원자

‘얼굴 없는 천사’로부터 수술비를 후원받은 신장병 환자들이 “꼭 전해 달라”며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보내온 감사 편지와 비누로 만든 꽃.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얼굴 없는 천사’로부터 수술비를 후원받은 신장병 환자들이 “꼭 전해 달라”며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보내온 감사 편지와 비누로 만든 꽃.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제 아내는 가난한 남편을 만난 탓에 긴 세월 신장병 고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사회사업팀에 연필로 빼곡히 적어 내려간 3장의 편지와 소파에 앉아 환하게 웃는 부부의 사진이 배달됐다.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얼마 전 퇴원한 김모 씨의 남편이 보낸 것이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혈액 투석에 의존해 고통을 받던 이들 부부가 행복을 되찾은 것은 익명의 후원자 덕분이었다. 사회사업팀은 “꼭 전해 달라”는 부부의 감사 편지를 ‘얼굴 없는 천사’에게 대신 전달했다.

형편이 어려운 신장병 환자들의 수술비를 10년 동안 몰래 후원한 심모 씨(56)를 20일 어렵게 만났다. 서울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심 씨는 2002년 3월 이 병원에서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다. 그는 “당시 20층 이식병동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치료를 위해 한 달간 입원한 병원 꼭대기 이식병동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신장병 환자들로 가득했다. 신장이식병동은 다른 병동보다 유독 쓸쓸했다. 어렵사리 신장 기증자를 찾았으나 돈이 없어 수술을 미뤄야 할 처지에 놓인 환자가 적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온 20대 청년은 심 씨에게 “기증자를 찾은 사실이 하나도 기쁘지 않다”고 털어놨다. 가정불화, 생활고로 젊은 나이에 고장이 나 버린 신장…. 불행이 겹쳤지만 3000만 원에 이르는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심 씨는 “같은 병실에 있었던 그 청년이 나보다 급했는데, 내가 먼저 수술을 받았다”며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신장병 고통에서 먼저 탈출한 것이 미안할 뿐이었다”고 돌이켰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부모 때문에 홀로 지내던 15세 소녀도 잊을 수 없다. 사흘째 가족을 보지 못한 소녀는 상태가 나빠져도 부모에게 쉽게 연락을 못했다. 자신의 전화가 수술비 독촉 전화가 될까 싶어서였다. 심 씨는 “당시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신장이식 비용이 수천만 원 들어 수술 대신 혈액 투석과 약으로 버티는 환자들도 있었다”며 “수술만 하면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돈이 없어 기회를 놓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지워낼 수 없었던 심 씨는 건강을 되찾고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모은 1000만 원을 들고 2007년 3월 병원 사회사업팀을 찾았다. 퇴원한 지 꼭 5년 만이었다. 그는 이후 1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수술비 기부를 이어왔다. 올해까지 누적 기부금은 1억7000만 원. 그의 기부금으로 수술을 받은 신부전 환자는 지금까지 40명이다. 그중에는 조선족, 탈북자도 있다. 41번째 신부전증 환자가 9월 수술을 앞두고 있다.

“(선행을) 오래할 생각은 없었다”는 심 씨는 어렵사리 인터뷰를 승낙했지만 사진 촬영은 한사코 거부했다. 신원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유를 묻자 “두 달에 한 번 약 타러 병원에 가는데, 행여 후원받은 환자들이 나를 보고 미안해할까 봐…”라며 “서로 모르는 게 좋다”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신장병#신촌세브란스#후원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