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피살 여고생 母 “지옥 같은 세월…남편 딸 따라갔다”

  • 동아닷컴
  • 입력 2016년 8월 9일 09시 38분


사진=동아DB
사진=동아DB
전남 나주에서 여고생이 강간·살인 당한 채 발견된 뒤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나주 드들강 사건’ 용의자가 15년 만에 법정에 서게 된 가운데, 피해자 어머니가 “지옥 같은 세월이었다”면서 심경을 토로했다.

2001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피해자 박모 양(당시 17세)의 어머니는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8월 5일, 딸의 생일날 용의자가 기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은 2001년 2월 4일 새벽 전남 나주 드들강변에서 당시 고등학교 3학년 여고생이던 박 양이 성폭행 당한 뒤 강물에 피살된 채 발견된 사건이다.

발견 당시 경찰은 박 양의 체내에서 용의자의 DNA를 채취했지만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고, 그렇게 미제사건으로 11년이 흘렀다. 그 후 나주경찰서는 2012년 8월, 다른 범죄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던 김모 씨(39)의 DNA가 박 양의 체내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함을 확인해 재수사에 착수했지만, 김 씨는 “성관계는 인정하지만 살해하지 않았다”면서 혐의를 부인했고 목포지청은 2014년 10월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박 양 가족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수사를 요청했고, 광주지검 강력부는 지난 7일 범죄심리학자의 정신감정 분석, 김 씨와 함께 복역 중인 재소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15년 만에 김 씨를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강간 등 살인)로 기소하고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명령을 청구했다.

“사는 세월이 지옥 같았다”는 박 양의 어머니는 “(2012년 김 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 잡았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불기소가 됐다는 걸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검찰에서 과정이 이렇다 저렇다 수사 상황(에 대해) 얘기 한마디도 없었다”면서 “정말 힘없고 빽 없는 사람은 이렇게 당하고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고, 그 때부터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박 양의 어머니는 “용의자가 ‘3, 4일 전에 자기가 (박 양과) 사랑해서 관계를 가졌다’고 검찰에 이야기를 했다더라”면서 “또 (12년 전) 목격자를 불러다가 ‘이 사람이 맞냐’ 대조를 시켰는데, ‘이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하니까 그걸로 그냥 불기소라고 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슬픔으로 술에 의지하던 남편은 딸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박 양의 어머니는 “고통 속에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서 “정말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라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저도 죽지 못해 사는 것 같다”면서 “자꾸 생각하면 막 심장이 멎은 것 같은 그런 고통을 받으니까 잊고 살려고 노력을 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영원히 묻힐 뻔한 사건이었는데 공소시효가 없어져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면서 “모든 범죄 피해자 가족들, 정말로 힘없고 빽 없는 우리 모든 가족들도 용기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양 사건은 지난해 7월 개정된 살인 등 강력 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일명 '태완이법' 덕택에 사건 발생 살인 공소시효인 15년이 넘어서도 계속 수사할 수 있었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