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백혈병 소년의 선율, 인천공항 적시다

  • 동아일보

13세 김기준군 밀레니엄홀서 독주회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소년 피아니스트 김기준 군이 22일 인천 중구 공항로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밀레니엄홀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소년 피아니스트 김기준 군이 22일 인천 중구 공항로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밀레니엄홀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13세 소년 피아니스트 김기준 군을 소개합니다!”

소년은 떨고 있었다.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고, 발도 동동 굴러봤지만 좀처럼 긴장을 떨칠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심호흡을 하던 소년은 자신이 호명되자 어렵게 발걸음을 떼 무대에 오르며 지난 2년간 늘 착용했던 흰색 마스크를 비로소 벗었다.

천천히 피아노 의자에 앉아 건반 위에 손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조심스러웠던 소년은 연주가 시작되자 이내 곡에 빠져들며 자연스럽게 음악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었다. 소년은 쇼팽의 ‘즉흥환상곡’,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등 4곡의 연주를 모두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와 다시 마스크를 쓰기까지 몸의 고통을 모두 잊은 듯 연신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런 소년에게서 병마(病魔)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김 군은 22일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 설치된 밀레니엄홀에서 난생처음 단독 연주를 했다. 전문가들을 초청해 문화예술 공연을 하는 밀레니엄홀에서 일반 개인이 단독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사회복지단체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의 후원으로 성사된 이날 공연을 위해 김 군은 두 달 전부터 밤낮으로 공연을 준비했다.

김 군의 공연을 지켜본 관람객들은 대부분 여행지에서 이제 막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여독(旅毒)도 풀리지 않은 100여 명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소년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김 군은 2년 전인 2014년 5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전교 부회장을 하는 등 누구보다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던 김 군이지만, 발병 이후 그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집중 항암치료가 시작되면서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고 하루에도 몇 번씩 구토와 두통에 시달렸다.

병마의 고통만큼 힘들었던 것은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인터넷에서 유명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연주 동영상을 우연히 보고 감동을 받은 김 군은 곧바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밤낮 피아노 곁을 떠나지 않았던 김 군에게 피아노를 멀리 하라는 것은 가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계속되는 항암치료와 합병증으로 연주는커녕 건반을 누를 힘조차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통증이 심해 피아노를 칠 수 없을 때에는 연주곡을 틀어놓고 머릿속에 건반을 그렸고, 몸 상태가 조금 호전되자 바로 다시 피아노를 찾았다. 투병 생활을 하는 김 군에게 피아노는 유일한 친구였다. 김 군은 “피아노마저 없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며 “손가락에 힘이 없어 건반을 누를 수조차 없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김 군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나처럼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따뜻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면서 “내가 가진 재능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피아니스트#김기준#백혈병#밀레니엄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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