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광표]우리 동네 오래된 빵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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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오피니언팀장
이광표 오피니언팀장
서울 돈암동에 사는 내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집 앞에 나폴레옹 빵집이 있어 정말 좋겠습니다.” 그 빵집은 장사가 잘된다. 역사도 오래됐다. 1968년에 생겼으니 이제 50년이 다 되어 간다.

내가 가본 빵집 중 제일 붐비는 곳은 단연 군산의 이성당 빵집이다. 종종 군산에 가면 그 빵집에 들른다. 그때마다 손님들이 빵집 앞 도로변 멀리까지 죽 늘어서 있었다. 손님이 하도 많다 보니 직원들은 늘 바쁘다. 카운터에서 빵을 봉지에 담아주는 직원들의 손놀림이 어찌나 빠르던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군산 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이성당 빵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이성당 빵집은 1945년에 생겼다.

대전역엔 성심당 빵집의 매장이 있다. 대전역 매장은 항상 붐빈다. 사람들은 성심당의 빵을 사들고 열차를 탄다. 성심당 빵은 그렇게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과 만난다. 사람들은 그 빵에 대해, 그 빵집에 대해 이야기한다. 1956년에 생겼다는 얘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간식으로 제공됐다는 얘기…. 동대구역에도 삼송빵집의 매장이 생겼다. 대구 삼송빵집은 1957년에 문을 열었다.

요즘 빵집 얘기를 참 많이 한다. 전국의 유서 깊은 빵집을 순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빵을 즐기는 것은 그 빵집의 빵 맛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즐기는 것은 그 빵집의 역사와 스토리다.

몇 달 전 서울 장충동 태극당 빵집 앞을 지나다 리노베이션을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걸 보았다. 1946년에 생긴 태극당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어떻게 리노베이션할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그 태극당이 최근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외관은 예전 모습을 유지했고, 내부는 과거의 흔적을 많이 살렸다. 홍보 간판과 카운터 안내판은 옛날식 그대로였다. 카운터 안내판에는 여전히 ‘납세로 국력을 키우자’라고 쓰여 있다. 1960, 70년대 분위기다. 곳곳에 오래된 타일, 찌그러진 전기 스위치, 고장 난 두꺼비집(누전 차단기)도 살려놓았다.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작은 박물관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오래된 빵집들은 점점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건물은 건물대로, 빵의 맛과 스토리는 또 그들대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미래의 유산인 셈이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훼손되거나 사라질지 모를 근현대 유산을 미리 보존하자는 취지다. 여기엔 청진옥(1937년), 한일관(1939년) 같은 음식점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두 음식점은 서울 청진동 재개발의 와중에 원래 장소를 잃고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옮기다 보니 외관도 바뀌고 내부도 바뀌었다. 당연히 분위기도 바뀌었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엔 청진동의 청진옥, 피맛골의 한일관으로 남아 있는데, 무분별한 재개발이 두 음식점의 장소성(場所性)을 망가뜨린 것이다.

일본 가가와(香川) 현의 고토히라(琴平)가 생각났다. 작지만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이곳엔 고토히라를 대표하는 긴료(金陵) 양조장이 있다. 그 역사가 무려 200여 년에 이른다. 지금도 술을 제조해 팔면서 공간 일부를 술 박물관으로 꾸며놓았다. 긴료의 역사를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둘러보면 우리의 지역마다 오래된 빵집들이 있다. 빵을 먹으며 우리는 그 빵집의 역사를 주고받는다. 빵집의 역사는 소중한 생활사이다. 우리 동네 빵집들이 오래 살아남아 100년을 넘기고, 빵집 어딘가에 빵 박물관 같은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 kplee@donga.com
#나폴레옹 빵집#이성당#성심당#삼송빵집#태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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