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국내 양식-양어업계의 대부… “해마타운 건립이 꿈”

  • 동아일보

<38> 관상어센터 노섬 대표

한국해수관상어센터 노섬 대표가 상품으로 판매가 가능한 말린 해마를 들어 보이고 있다. 노 대표는 중국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해마 대량생산에 성공해 ‘해마타운’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국해수관상어센터 노섬 대표가 상품으로 판매가 가능한 말린 해마를 들어 보이고 있다. 노 대표는 중국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해마 대량생산에 성공해 ‘해마타운’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해안에 위치한 한국해수관상어센터. 24일 오후 진눈깨비가 흩날렸지만 열대어가 자라는 관상어센터 내부는 27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포근했다. 크고 작은 수조에는 흰동가리 등 해수 관상어인 클라운피시(Clownfish) 7종이 헤엄치고 있었다. 앙증맞은 크기에 울긋불긋한 색깔이 선명했다.

옆 동에는 온통 ‘해마(sea horse)’로 가득했다. 갓 부화한 어린 새끼부터 15cm가 넘는 성체까지 다양했다. 갑옷 형태의 거죽에 머리는 말 모양, 꼬리는 원숭이를 닮았다. 가슴지느러미를 프로펠러 돌리듯 하며 유영하다가 해가 떨어지면 휴식에 들어간다. 어린 새끼를 부화시키기 위해 배가 불룩한 채 꼬리로 그물 줄을 감싸 안은 채 쉬고 있는 수컷도 눈에 띄었다. “정부와 제주도에서 해마 대량 생산을 위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해마 산업화를 위해 양식단지를 본격적으로 조성했다면 어느 정도 골격을 갖췄을 텐데 유야무야 넘어가는 듯합니다.”

관상어센터 노섬 대표(74·제주대 명예교수)의 목소리에는 섭섭함이 묻어났다. 정부, 제주도 고위 관계자 등이 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해마 단지’ 등을 약속했다. 해마 양식이 중국인이 선호하는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하지만 폭등한 땅값이 발목을 잡았다. 용지 구입에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땅값이 오르면서 사업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노 대표는 “진행 과정을 알려줬으면 대안을 세웠을 텐데 공무원들이 미적미적하는 바람에 1년가량을 허송세월했다”고 말했다.

○ 국내 양식·양어 업계 대부

노 대표는 국내 양식, 양어 업계에서는 ‘대부’로 불린다. 제주대 해양과학대 교수 시절 관상어협회 원로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양식기술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해수 관상어에 대한 관심은 없다”는 말을 듣고 관상어 종묘 생산에 도전해 명인 반열에 올랐다. 2004년 해수 관상어 생산 기술을 개발해 제주대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해수 관상어 산업화를 위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퇴임(2007년) 이후 소일거리를 하기 위해 2005년 관상어센터를 설립했다. 해마를 관상어 종묘로 생산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2012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국제관상어전시회는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노 대표가 전시한 해마를 보려는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 중국인 바이어가 “중국에 식용, 약재로 팔면 수익이 많이 날 것 같은데 관상어로만 키울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료를 뒤져본 결과 전 세계에서 생산된 해마의 80%가 중국으로 들어가고 시장 규모가 연간 7조2000억 원에 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바로 종묘 생산에 매달렸다. 당시 세계 16개국 28개 기업이 연간 해마 448만 마리 정도를 생산하고 있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어렵게 키운 해마 16만 마리를 한꺼번에 잃기도 했다. 갖은 노력 끝에 2014년 현재 관상어센터 수조에서 연간 60만 마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성장 시기에 따라 먹이생물을 달리한 것이 주효했다. 해마 7종 가운데 성장 속도가 빠르고 질병 등에 강한 바버리, 빅벨리 등 2종을 주력 종으로 정했다.

소식을 들은 중국인 양식 관계자 등이 지난해 현장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중국 양식업계는 1957년부터 해마 대량생산을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종묘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수조 내 밀식(密植) 사육이 필요한데 중국에서는 원인 모를 질병으로 모두 폐사했다. 더욱이 10cm 이상 성체로 키우기도 쉽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노 대표는 밀식사육은 물론이고 25cm 이상으로 키워냈다. 지금도 60만 마리가 관상어센터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일부는 지난해부터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의 원료로 판매되기도 했다.

○ “해마는 생의 마지막 역작”

중국에서는 말린 해마가 1kg에 150만 원에 팔리고 크기가 클수록 높은 가격을 받는다. 중국 양식업계와 바이어 등이 노 대표에게 큰 관심을 갖는 이유다. 중국에서 150억 원 규모의 투자와 기술 이전을 위해 구애 작전을 펼치고 있지만 노 대표는 아직 결정을 미루고 있다.

“해마는 생의 마지막 역작이기에 대량생산 기술을 쉽게 이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술이전은 제주에서 산업화가 실패했다고 최종 판단했을 때 취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현재 다양한 정부 지원을 얻기 위해 특허 출원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노 대표는 경남 합천 출신이지만 6·25전쟁 당시 어머니 고향인 전남 여수에서 피란 생활을 하며 정착했다. 미술 전공을 희망했지만 생계를 위해서 수산고에 진학했다. 해양생물을 보고 만지는 것이 즐거웠다. 부경대의 전신인 부산수산대에서 전문적으로 양식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국립수산진흥원(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이곳에서 미역, 보리새우, 꽃게 양식 등을 연구했고 국내 처음으로 전복 양식과 산업화를 이끌었다.

제주로 건너 온 것은 1985년. 제주에 먼저 정착한 선배의 권유로 교수의 길을 선택했다. 현미경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열악한 환경이었다. 한동안 후회하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연중 섭씨 17도로 온도가 일정한 지하 해수를 활용하면 양식 산업의 신기원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넙치, 복어 양식에 성공하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수출 효자 종목인 넙치 양식 산업에 주춧돌을 놓은 것도 노 대표다.

“후회 없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왜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지금까지 명절에 조상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어요. 연휴에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양식 물고기들이 생물인지라 꼬박꼬박 먹이를 공급해야 하거든요. 빨간 날에는 직원들이 우선 쉬어야 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메울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이 일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노 대표의 꿈은 ‘해마타운’ 건립이다. 관람객이 해마를 양식하는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체험관, 전시관, 판매관 등을 만드는 것이다. 해마타운을 만들기 위해 노 대표의 둘째 아들(41)은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왔다. 막내아들(39)도 대를 잇기 위해 국립수산과학원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두 아들이 그의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으니 해마타운을 볼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 中 해마 소비량 年 1억5000만 마리… 경제력 높아지며 소비층 넓어져 ▼

해마는 실고깃과에 속하는 경골어류로 세계적으로 30여 종이 분포하고 있다. 국내에는 복해마, 가시해마, 왕관해마, 산호해마, 점해마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해양생태학자 연구에 따르면 중국에서 소비되는 해마는 연간 1억5000만 마리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에서 해마는 600년간 건강 보양을 위한 식용이나 약재로 쓰였다. 공산당원이나 부유층 등이 해마를 애용했으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소비층이 넓어졌다. 중국에서 기존 유통량 외에도 연간 1억 마리 정도 추가 수요가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중국의 해마 소비량 가운데 5% 정도만 중국에서 생산되거나 잡히고 나머지는 해외에서 수입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해마 수입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부분 밀수입으로 유통되는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싶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으로의 해마 공급은 여의치 않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 해마가 주로 공급되고 있지만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야생 해마의 포획과 유통 규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길러진 양식 해마는 이 같은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 중국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에 마른 해마, 냉동 해마를 수입 가능 품목에 포함시켜 주도록 요청한 상태다. 중국 해마 시장이 열리면 대량 양식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해수관상어센터는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된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